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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만 나무라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6월 발표한 '학교생활규정'이 학생 인권의 악화 또는 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 개정을 통해 체벌을 금지할 것과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데 대해 교육부가 사실상의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교육부는 교직단체·학부모 단체·교장회, 각 시·도 교육청의 의견을 들어 결정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교육 문제는 여론을 들어 결정할 문제가 결코 아니며, 인기에 영합해 결정할 사항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 인권에 대해 가장 관심 많은 사람은 학교 선생님들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 선생님들을 학생에 대한 가해자로서 피고석에 앉히려 한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생활지도규정'도 문제가 많다. 비록 예시안이라곤 하지만 매를 맞는 신체적 부위, 매의 길이와 굵기, 매를 사용하는 구체적 방법까지 정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누구에게는 매를 대고 누구는 격려해줄 수 있어야 진정한 교권이 확립될 수 있다. 교사는 재판관이 아니다. 매를 대야 효과 있는 아이도 있고 매를 대서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교사의 몫이다.

각급 학교는 어린이회·학생회를 조직해 학생 자치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이는 장차 학생들이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키워주기 위한 민주시민 교육프로그램일 뿐이다. 학생과 교사는 인격적으로 평등한 것이지,스승과 제자가 되면 평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육의 원리다. 초·중·고 학생은 미성년자로서 법률행위를 할 때는 법정 대리인이 하거나 그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다"라는 항목에 대해 학부모 72%, 교사 65%가 "그렇다"고 동의한데 비해 학생들은 38%만이 동의한다. 학교공부도 "싫으면 안해도 된다"는 학생의 응답이 59%에 달하고 있다. 여기서 요즘 학생들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금 교사들은 겁 없는 아이들 앞에서 울고 있다. 학교에서 매는 폭력이고 학원에서의 매는 생활지도라는 말을 들으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한다. 교실을 나오며 "지금 내가 수업을 했는지 아이들과 전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긴 한숨을 짓는다. 교사는 학습 지도보다 치안 유지를 위한 보안관 노릇하기 바쁘다. 요즘 아이들은 그 옛날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그런 아이들이 아니며 오늘의 부모들은 남의 집 아이들을 울리고 들어온 자기 자식에게 매를 대던 그 옛날의 부모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학부모들은 어릴 때 아이들을 엄격하게 키워 학교에 보내는데 비해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버릇없이 키워 학교에 보낸다. 교사의 영이 서지 않는 교실붕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 이상 학교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선생님을 믿어야 교육이 이뤄진다. 서양 격언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고 했고,"자식을 사랑하거든 매를 들라"고도 했다. 인간 교육은 스승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자식을 학교에 보냈으면 선생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아직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기본생활 습관이 몸에 배지 못한 아이들에게 함부로 인권과 자유, 평등을 들이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숙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가정에서 버릇없이 키우고, 사회에서 아이들 비위 맞추고, 언론에서 유행을 만들어 아이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 이에 대한 유일한 브레이크 장치가 바로 학교다. 학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오늘의 학교붕괴는 학교 교육을 떠받쳐 주던 가정과 지역사회의 역할과 기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교를 흔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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