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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7진통 격는 盧·鄭 단일화]'27시간 마라톤 협상'도 결론 못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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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 재협상이 산고(産苦)를 거듭하고 있다. 21일 오전에만 합의문 발표가 네차례나 연기됐고, 결국 오후 10시쯤 2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아무런 합의없이 헤어졌다.

양측은 협상 중단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저쪽이 먼저 자리를 떴다. 내일 다시 협의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렬이냐'는 질문에는 "무산됐다면 내일 다시 만나겠느냐"며 협상의 여지를 계속 열어놨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金元基 고문), "단일화는 최선의 과제다. 깨는 것은 피해야 한다"(李相洙 총무본부장), "내일 아침에 다 타결될 수도 있다"(金景梓 홍보본부장)는 등 민주당 지도부도 결렬이 아닌 '잠시 중단'임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자 통합21 측은 "민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정광철(鄭光哲)공보특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7시쯤 최종 합의에 도달했고 8시엔 양측 미디어팀이 TV토론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까지 했는데 9시쯤 저쪽에서 완성된 합의문을 들고 한시간쯤 외부에 다녀온 뒤 두가지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鄭특보는 "이에 우리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고, 5분 뒤 내일 다시 만나자고 제안하더라"고 덧붙였다.

회담 결렬 후 민주당 지도부는 지치고 심각한 표정이었던 데 비해 통합21 협상단은 만면에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행(金杏)대변인은 "원하는 건 다 반영했다"며 반겼고, 김민석(金民錫)총본부장은 "합의했다가 사인만 안하고 나온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양측은 22일 다시 만나기로 해 결국 단일화 결렬과 극적 타결의 마지막 고비를 맞게 될 전망이다.

양측은 지난 20일 오후 7시부터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옛 스위스그랜드호텔) 1025호에서 마주앉았다. 초반에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TV토론과 관련, 주관단체·패널·주제·시간 등은 비교적 쉽게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재협상에 돌입하면서 서로간에 고성(高聲)이 오가는 등 진통을 보였다. '한나라당의 역(逆)선택 방지 장치를 추가해야 한다'는 통합21의 주장이 핵심 논란거리였다.

21일 오전 8시45분 양측은 극적으로 타협안을 만들어냈다. 즉시 양당 지도부에 합의안이 보고됐다. "당초 예정보다 한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돼도 회견장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후 민주당 문석호(文錫鎬)대변인이 30분 연기를 알렸다. 이때만 해도 양당 관계자들은 "차가 막히나 보다"는 등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전 11시로 세번째 늦춰지면서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갔다. 그리고 오전 10시40분쯤 통합21 당사에 "기대하지 말라. 우린 아직 출발도 안했다. 오후에도 합의안이 못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閔단장의 발언이 전해졌다.

이처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협상안을 보고받은 鄭후보가 흔쾌히 동의하지 않고 보완을 지시했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실제로 鄭후보는 오전 9시40분쯤 당사를 나가다 기자를 만나 "잘 되겠죠"라고 말했으나, 평소 그답지 않게 굳은 얼굴에 퉁명스러운 목소리여서 회담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도 "저쪽에서 계속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며 협상을 틀고 있다"고 鄭후보를 지목했다.

오전 11시40분 기자들이 협상장소로 찾아가자 이들은 승용차 세대에 나눠타고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이들이 묵었던 방은 40평 규모의 로열 스위트룸. 인터넷으로 언론 보도를 체크했고, 조간신문도 줄을 그어가며 읽은 흔적이 남았다. 침대는 어질러져 있었고 담배꽁초도 수북했다. 밤샘 진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옆방인 1027호도 함께 빌려 수시로 각당 지도부와 전화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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