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병기 '소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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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7면

소주 한 병을 잔에 찰랑거리게 따르면 일곱 잔이 나온다. 둘이 넉 잔씩 마시기에는 한잔이 부족하고, 셋이나 넷이 마셔도 똑같이 잔을 나눌 수 없다.

이는 7이 1과 자기 자신 밖에는 약수가 없는, '소수'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만일 한 병에서 여덟 잔이 나오게 했다면 둘이나 넷이 마실 때(2와 4는 8의 약수다) 한 병당 넉 잔 혹은 두 잔씩 공평하게 마실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일곱 잔이 되게 한 것에는, 짝이 맞지 않기 때문에 술을 더 주문하게 하려는 전략도 없지는 않았을 터다.

소수는 오래 전부터 그 성질이 알려졌다. 이미 기원전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소수가 무한히 많다는 것까지 증명했다.

소수가 무한히 많으므로 제일 큰 소수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지금까지 더욱 큰 소수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더 큰 '메르센 소수'를 찾아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의 수학자 메르센이 자신의 이름을 딴 '메르센 소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2를 여러 번 곱한 뒤 여기서 1을 뺀 것이 소수일 때, 이를 메르센 소수라고 한다. 제일 작은, 그래서 '첫번째 메르센 소수'라 불리는 것은 3(2×2-1)이고, 두번째 메르센 소수는 5다.

97년에 발견된 36번째 메르센 소수는 89만5천9백32자리로 A4용지에 쓰려면 4백50쪽이 필요하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4백5만3천9백46자리인 39번째 메르센 소수를 발견했다.

왜 이렇게 큰 소수를 찾는 일에 관심을 쏟는 것일까. 소수를 찾는 것 자체도 수학적 의미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큰 소수가 몹시 풀기 어려운 암호를 만드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소수 두개를 곱해 숫자를 만들고, 그 숫자가 무엇의 곱인지 알아야 암호를 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수퍼컴퓨터가 수백년 걸려도 못 푸는 암호를 만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번번이 일본에 암호를 해독당한 미국은 기괴한 나바호 인디언의 말로 암호를 만든 뒤 기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암호병으로 나바호 인디언들이 활약했음은 물론이며, 그 공으로 나바호 인디언들은 지금 가장 넓은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전쟁에서 활약했고, 현대의 수학자들은 금융거래·신용카드 사용·사이버 쇼핑 등이 안전하게 이뤄지도록 풀리지 않는 암호를 만들어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수학자들에게 마음속으로라도 갈채를 보냄이 어떨까.

kpark@math.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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