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걸리면 어때" 노골적 지지 부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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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선 때마다 되풀이돼 온 후보들의 사조직 문제에 대해 선관위가 20일 '폐쇄 명령'이라는 철퇴를 가했다. 공명선거 실천을 위해 무엇보다 사조직을 통한 불법 선거운동 행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선관위가 20일 공개한 각 진영의 사조직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이미 사조직이 당이라는 공조직과 맞먹을 정도로 대형화돼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지지 활동을 해온 하나로산악회는 15개 특별위원회·1실·4본부·12국의 본부 조직을 비롯해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지부를 둔 방대한 조직이다.

선관위가 입수한 회원 명단엔 서울 종로·중구 등 5개 지부에서만 1천1백15명의 인적 사항이 기재돼 있어 전국적으로 회원수가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선 직전인 12월 15일까지 회원 2백만명 확보 운동을 하고 있다.

입당 원서를 배포한 흔적도 발견됐다. 최근 당 직능특위 환경위원회 산하로 조직을 이관했지만, 선관위 측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李후보 후원회 산하의 부국산악회에 대해서도 선관위 측은 "앞으로 공조직에 흡수되지 않을 경우 추가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후보를 지지하는 청운산악회는 온라인 조직이었던 '정위사'(정몽준을 위하는 사람들)를 지난 9월 산악회 조직으로 재편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34개 지회를 결성해 2천여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지난 16일 관악산에서 회원 2백50명이 모여 출정식할 때 산악회 상임고문 李모씨가 "鄭후보의 당선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난 선거법에 걸려도 괜찮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선관위의 이번 조치로 가장 타격을 받은 후보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당 조직이 원활히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원수가 6만여명에 달하는 노사모가 盧후보를 받쳐주는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盧후보 측은 "선관위가 李·鄭후보에 대한 제재는 구색 맞추기용으로 집어넣고 실제는 노사모 죽이기에 초점을 맞췄다"며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선관위는 지난 9월 19일 노사모가 '대선 D-100일에 즈음한 발표문'에서 盧후보 지지를 공개 표방했고, 중앙노사모 및 전국 지역노사모가 홈페이지와 집회에서 희망 돼지 저금통 배포 사업을 통해 盧후보 지지를 권유해 선거법 위반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미 수차례 경고했는데도 노사모가 이를 계속 무시하고 있어 강경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사모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라며 "노사모는 3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결성된 모임이라는 걸 선관위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선관위 측과 한바탕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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