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挑肥揀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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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는 낙양을 수도로 삼고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건립했다. 어느 해 연말 황제는 태학의 모든 박사에게 양 한 마리씩을 하사했다. 양떼가 태학 뒷마당으로 배달됐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살찐 양과 마른 양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나눠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묘책이 없었다. 이때 박사 견우(甄宇)가 소리쳤다. “우리는 모두 학문을 가르치는 박사들이오. 다른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돼야 할 우리들이 이런 자질구레한 일로 다투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가질 수는 없소!” 말을 마친 그는 양떼 속에서 가장 작고 마른 양 한 마리를 골라 끌고 돌아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낙양 주민들은 그를 ‘마른 양 박사(瘦羊博士)’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 골라 취한다는 뜻의 성어 도비간수(挑肥揀瘦)의 유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한국 속담의 중국식 버전이다. 감여고토(甘茹苦吐), 감탄고토(甘呑苦吐)가 같은 뜻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良藥苦于口而利于病),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忠言逆于耳而利于行). 은(殷)나라 탕(湯)왕과 주(周)나라 무(武)왕은 간언하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어 번창했고, 하(夏)나라 걸(桀)왕과 은나라 주(紂)왕은 아첨하는 신하들만 있어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언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멸망하는 일이 없으며, 집안에 덕을 거스르는 악행이 없으며, 친구 간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다. 달아도 뱉고 써도 삼켜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중국은 그동안 하버드대 니알 퍼거슨 교수의 신조어 ‘차이메리카(中美國)’나 G2라는 용어를 부정했다. 이를 미국의 ‘음모’이자 ‘중국 위협론’의 또 다른 버전일 뿐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던 중국이 변했다. 공산당 기관지는 연일 미국을 향해 ‘중국의 부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특히 동아시아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배고프니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는(飢不擇食)’ 중국은 더 이상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중국만 남았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