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악동 에미넴, 너를 용서하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9면

악동 에미넴은 진짜 타고난 천재 엔터테이너인가.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랩 음악에도 불구하고 정상의 인기를 누리는 미국의 백인 래퍼 에미넴이 이번에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에미넴의 자전적인 내용이 가미된 영화 '8마일'은 지난 8일 미국 전역 2천4백70개 극장에서 개봉돼 첫 주말 사흘 동안 5천4백만불의 입장수입을 올리며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올해 개봉된 R등급의 영화 중에서는 '한니발'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대단한 흥행 기록이다. 영화사가 당초 기대했던 것의 갑절에 해당한다.

'8마일'은 'LA 컨피덴셜'의 감독 커티스 핸슨이 연출을 맡았고, 할리우드의 톱 시나리오 작가인 스코트 실버가 대본을 썼다. 경제가 어렵고 분위기가 황량한 디트로이트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백인 소년이 외롭게 래퍼 가수의 꿈을 키운다는 얘기다. 여기서 에미넴은 이 백인 소년 역할을 맡았다.

지난 2년간 가장 잘 팔린 음반으로 자리를 굳힌 '에미넴 쇼' 앨범의 판매량은 7백만장. 불과 사흘 동안 그의 영화 '8마일'을 본 관객 수가 무려 8백만명. 천재적인 엔터테이너라는 얘기가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의 성공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뉴욕타임스의 영화비평가 엘비스 미첼은 이같은 래퍼 영화가 주류영화에 합류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악동 래퍼 에미넴이 드디어 미국 사회 주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에미넴이 폭력적이고 외설스러운 랩으로 동성애자로부터는 동성애 차별주의자로, 여성들로부터는 여성혐오주의자로 낙인찍혀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물론 이같은 변화가 젊은층, 특히 에미넴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층으로부터 시작된 건 사실이다. 영화를 배급한 유니버설의 한 관계자는 "영화를 본 관객의 53%가 여성이며, 관객의 69%가 25세 미만의 젊은이였다"고 밝혔다.

'8마일'은 무엇보다도 그의 노래에 충격받고 그를 혐오해온 부모들로부터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 영화에는 에미넴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빠져 있다. 동성애 차별, 극단적인 여성 혐오, 닥치는 대로 표출한 하층민의 분노, 번득이는 적의 등등. 따라서 지난 3년간 에미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공포와 혐오를 느낀 부모들은 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나아가 "일단 에미넴의 랩을 듣고 영화를 본다면 그의 놀라운 재능을 실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녀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본 미국인 부모 관객들은 대체로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갖고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 다가온다""랩을 싫어하지만 영화속 에미넴은 좋은 역할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보수적인 CNN의 시사프로 '뉴스나이트'도 '8마일'을 이번주의 성공작으로 꼽으며 에미넴을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임스 딘에 비유했을 정도다.

저항적 성향의 연예인이 주류에 합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연륜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에미넴은 첫 앨범 '슬림 셰이디 LP'를 내놓고 불과 3년 만에 주류문화의 흐름을 탄 셈이다. 음악계에 등장하자마자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메시지로 논란을 일으켰던 에미넴. 어머니를 폭행하는 내용을 담은 곡 '킬 유(Kill You)' 때문에 진짜 어머니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1천6백달러를 물어주기도 했던 바로 그 악동이 거둔 성과라 더욱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