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결의 전면수용-전쟁-시간끌기 후세인 '3자 택일' 기로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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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막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라크의 전면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441호를 거부할 경우 당장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반대로 안보리 결의를 순순히 수용할 경우 국내 정치적 기반을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너에 몰린 후세인이 안보리 결의 전면 수용, 전쟁, 시간끌기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면밀히 따지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전면 수용=후세인이 안보리 결의를 1백% 수용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 따를 경우 이라크는 유엔 무기사찰단의 사찰을 성실히 받고 대량살상무기를 자진신고해 폐기해야 한다. 후세인은 미국과의 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지만 정권 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이라크가 성실히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면 정권의 성격이 바뀐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속셈이 정권교체에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사찰 과정에서 주권의 상징인 대통령궁까지 낱낱이 공개할 경우 후세인의 국내 정치적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 유지는 매우 힘들어질 전망이다.

◇전쟁=후세인이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안보리 결의를 거부하고 전쟁에 나서는 경우다. 이 경우 후세인은 비밀리에 개발해온 생화학무기를 손에 쥐고 미국과 일전을 벌일 수 있다. 후세인은 전쟁 초기부터 스커드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 전쟁을 아랍 대(對) 이스라엘의 구도로 끌고 갈 공산이 크다. 결국 이라크는 미국에 패하겠지만 후세인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다 장렬히 순교한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시간끌기=가장 설득력이 큰 이 시나리오는 후세인이 유엔 사찰단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내년 2월까지 시간을 끌어 안보리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후세인은 사찰 과정 중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비둘기파인 프랑스·러시아·중국에 대해서는 적극 협력하지만 매파인 미국과 영국에 대해서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할 가능성이 크다.

그후 사찰방해 기준 등 안보리 결의의 허점을 파고들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안보리는 다시 한번 내홍(內訌)에 시달릴 수 있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한 마틴 인디크는 "후세인은 일단 유엔에 협조하는 것처럼 하면서 무장해제를 피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군사전문가들은 후세인이 본격적인 사찰 일정을 내년 봄까지만 늦출 수 있으면 전쟁을 피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3월부터는 중동지역 기온이 상승, 미군이 사막 작전을 수행하기가 힘들어진다. 1991년 걸프전도 전투는 2월에 마무리됐다.

아랍지역의 또 다른 관측통들은 만일 후세인이 사찰 국면을 내년 가을까지만 끌고 갈 수 있으면 미국과의 전쟁은 물건너 갈 것으로 희망 섞인 관측도 내놓고 있다. 내년 10월 이후에는 미국이 사실상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에 이라크와의 전쟁이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최원기 기자

brent1@joongang.co.kr

◇후세인의 정치 편력

▶1937년 바그다드 북부 출생

▶57년 학생 시절 아랍민족주의계열 야당 '바트당'에 입당

▶59년 압둘 카림 카심 대통령 암살기도에 가담, 이집트로 도주

▶63년 바그다드로 귀환. 바트당 내 입지 강화

▶79년 바크르를 승계해 대통령에 취임

▶80년 이란 침공, 8년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 1차 걸프전 발발, 91년 패퇴

▶98년 유엔 무기 사찰단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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