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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대림 선 어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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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주재료가 생선인 어묵은 일본어로는 ‘오뎅’이라고 불린다. 생선을 구하기가 쉬운 항구 근처에서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선 1940년대부터 주로 부산에서 소규모 업체들이 만들었다. 부산 자갈치시장 건너편에서 환공식품이 팔기 시작해 ‘부산 어묵’이 유명해졌다. 부평동 오뎅할매·부산 효성어묵·대원어묵·부산어묵 등 소규모 지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던 어묵 시장에 대림이란 수산 대기업이 진출해 내놓은 브랜드가 ‘대림 선 어묵’이다.

80년대 후반은 미국·영국 등이 외국 어선에 대해 200해리 경제수역 내 어로행위 규제를 강화해 조업 환경이 나빠질 무렵이었다. 어장 확보가 어려워지고, 입어료 부담이 늘어나자 당시 대림수산(현재 사조대림)은 자구책으로 수산식품 가공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대림은 87년 원양에서 명태를 잡아 가공하는 배인 ‘52대진호’에 40억원을 들여 하루 35t을 가공할 수 있는 선상 가공시설을 갖췄고, 안산 반월지구에 100여억원을 투자해 공장도 세웠다. 한 해 전엔 어묵 가공업체인 상지식품도 인수한 터였다.

2년여간의 준비 끝에 89년 5월 ‘대림 선 어묵’(로고)이란 브랜드로 어묵 신제품을 선보였다. 유통 기한이 짧은 편이라 전국적인 콜드체인(냉장 유통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브랜드 이름은 한자를 사용해 ‘鮮(선)’으로 정했다.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북태평양 베링해에서 갓 잡은 명태를 배 위에서 가공한 후 급속 냉동해 연육으로 만들어 안산공장으로 직송했다. 소규모 업체들과 원료에서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선 단맛이 강한 어묵이 주였지만 대림 선 어묵은 단맛을 줄이고 담백하고 고소하게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동안 튀긴 어묵 한 종류이던 제품군도 찐 어묵과 구운 어묵 등으로 다양화했다. 제품명은 ‘춘향이’ ‘황진이’ ‘엄지’ 등 친숙한 고유어로 붙였다.

광고에서도 “그냥 어묵이 아니고 선 어묵이에요” “싱싱하고 깨끗해서 ‘선’” “‘선’ 보고 고르세요”라는 카피로 기존 어묵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대림과 삼호·동원 등 수산 대기업들이 어묵 시장에 속속 진출하면서 연 3~4% 늘어나는 데 그쳤던 시장 규모도 90년대 들어 매년 20% 이상씩 커지게 됐다.

대림은 2006년 사조가 인수해 회사가 사조대림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브랜드는 ‘대림 선 어묵’ 그대로다. 2008년에는 시장점유율 24%, 지난해엔 25.8%로 1위를 차지했다. 한 해 600여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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