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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40회 ·끝> 연재를 마치며… 취재기자 좌담:'환란 初心' 잃어 절호의 개혁기회 놓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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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수길=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국민의 정부 경제 실록'준비에 들어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군요. 연재를 시작하며 전체 제목을 무엇으로 다느냐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주어진 개혁, 준비된 개혁'이 꽤 강력한 후보였는데, 결국 '미완의 개혁'으로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른바 'DJ 노믹스'라고 한다면 DJ 집권 5년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99년 말의 '환란 극복' 선언 이전과 이후로 말입니다. 전반기에는 구조조정 등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주어진 개혁'을 선택의 여지 없이 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후반기에는 남북·의료개혁·생산적복지 등 '준비된 개혁'에 들어갔습니다. 준비된 개혁을 위해 환란 극복 선언을 서둘렀고, 그래서 결국 '미완의 개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이정재=우리가 복원(復元)하려 했던 'DJ 노믹스'는 결국 중경회(中經會)를 비롯한 DJ 주변 학자들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DJ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시장주의와 평균주의의 혼재'였습니다. 구조조정 때는 지지기반인 노조 등으로부터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들었고, 건강보험통합·의약분업 등을 놓고는 '대중영합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의약분업은 애초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가 주도하다가 의료대란이 터지자 다급해진 끝에 정부가 의협 등 이익단체와 타협하고마는 과정이었음이 이번에 기록과 증언으로 생생하게 되살려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이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상렬='영웅본색(英雄本色)'이라고 할까요, 결국 '시장론자 DJ'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외환위기로 IMF와 국제사회의 개혁 요구가 거세지 않았다면 DJ는 임기 초반 그토록 강렬한 시장주의자의 모습을 띠지 않았을 겁니다. 예컨대 대통령 당선 직후, 정리해고제가 핵심인 이른바 'IMF 플러스' 개혁을 받아들이는 DJ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대선 기간 내내 정리해고제에 대해서는 '2년간 유예'가 DJ의 입장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DJ의 그처럼 빠른 변신과 적응 덕에 환란 초기 국제사회는 한국을 믿어주기 시작했고, 결국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위기의 시절, DJ의 리더십은 돋보였습니다.

▶김수길=경제 실록 1·2·3·4부의 타이틀은 모두 DJ의 육성을 따온 겁니다. 1부 '금고가 비었습니다'와 2부 '도와주십시오, 국민 여러분'은 외환위기를 극복해내기 위한 주어진 개혁기를, 3부 'IMF 졸업했습니다'와 4부 '경제엔 임기가 없다'는 준비된 개혁기를 다룬 것이지요. 정치인은 다 말을 잘 하지만, DJ도 정확히 그때 그때 각 시기를 규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정재=DJ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었지만, DJ의 재벌개혁은 결과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도 개혁에 온 힘을 쏟으면 되는데, 이른바 빅딜 등 정부의 자의적 개입이 들어가며 이상하게 본질이 흐려졌거든요. 예컨대 오너의 등기이사 등재, 사외이사제 강화 등 기업 지배구조 개혁 조치들은 매우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상호출자 차단같은 강력한 수단이 있는데도 굳이 빅딜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세계은행 등에서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상렬=정권 초기 기업 개혁의 키워드는 '은행을 통한 개혁'이었습니다. 정부가 아닌 은행이 기업을 직접 상대하게 하고 정부는 은행을 조인다는 것이지요. 이는 정해진 기준과 제도로 재벌 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정권이 직접 나서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재벌과 정권이 타협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빅딜로 헝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정재=사실은 재벌들도 빅딜을 원했지요. 정권은 개혁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재벌은 경쟁력 없는 계열사를 큰 돈 안들이고 처리하기 위해서. 결국 과거의 중화학투자조정처럼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정부의 직접개입은 좋지 않다는 큰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은 셈입니다.

▶김수길=요컨대 기업 개혁은 부실을 어떻게 막고 어떻게 떨어내느냐는 제도를 만드는 것인데, 대우그룹 퇴출이나 현대 그룹 계열분리 등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으면서도 비교적 잘 처리한 반면 대우차나 하이닉스 등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정재=대우·현대는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구조조정에 게을렀으며 정권과의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우는 패망했고 현대는 계열분리로 끝났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현대는 대우와 달리 현대차 등 돈을 벌어들이는 알짜 기업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현대는 대북사업을 하고 있었지요.

▶이상렬=대우·현대 모두 기업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한 측면이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구조조정은 미루고 DJ와의 독대에 매달렸고, 현대는 대북사업에 역량을 쏟아부었습니다. 취재 중 만난 많은 대우 사람들이 현대를 예로 들면서 대우 패망이 억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북사업이 정부의 현대 처리에 중요한 변수였던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현대가 대북사업을 안했다면 과연 지금 모습으로 살아남았을까 하는 문제는 앞으로 더 규명돼야 할 겁니다.

▶김수길=대우차는 매각시기를 놓친 끝에 결국 처음보다 훨씬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던 사례입니다. 그동안 은행 돈은 은행 돈대로 들어갔고. 결국 거대한 도덕적 해이였지요.

▶이상렬=대한생명도 가격만 놓고보면 맨 처음 LG가 인수를 희망했을 때 주는 것이 맞았습니다. 재벌에 줬다간 여론이 나빠진다며 눈치만 보다가 실기했지요.

▶이정재=제일은행 해외매각을 놓고는 지금도 말이 많습니다. 당시 제일은행의 여신은 약 23조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19조원입니다. 때문에 제일은행을 그냥 퇴출시키고 정리했어도 해외매각 후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보다 국민 세금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일은행 해외매각은 한국의 부실 정리 의지를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수길=제일은행을 포함해 초기에 기업들이 헐값에 팔려나간 것은 부득이 했습니다. 달러는 급했고, 기업이나 부실채권을 파는 노하우도 축적돼 있지 않았으니까요. 공적자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란이란 불이 나자 우선 불길을 잡는 것이 급했는데, 진화가 끝나고나니 물을 많이 썼다는 논란이 뒤따르는 것이지요.

▶이상렬=초기 진화야 그랬다 치더라도 공적자금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시기는 더 앞당겨야 했습니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제정된 것이 2000년 말이니, 무려 3년간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한 셈입니다.

▶김수길=공적자금에 대해선 야당도 책임이 있습니다. 공적자금 관리체계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일이야 마땅하지만,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략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자 여당이 총선에 발목이 잡혀 2차 공적자금 조성시기를 놓치고 말았지요.

▶이정재=전체적으로 DJ 노믹스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일단 외환위기 극복은 후한 점수를 받을 겁니다. 2000년 후반기의 불황을 내수 확대로 푼 것도 좋았지만, 너무 오래 끌다가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친 것이 문제고. 정권 말기에야 겨우 칠레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합의했습니다만 농민·노조의 반발로 개방에서 별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또 초기의 환란 진화 후 제도와 법으로의 전환을 빨리 서둘러야 했는데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상렬=공기업 민영화 지연, 의료대란, 농업정책 등에서 보듯 DJ정부는 노동계·농민·의료계 등 많은 이익단체에 휘둘렸습니다. 정부가 원칙을 세워 이익집단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국정이 어떻게 표류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정재=요즘 정치권이나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보여주는 행태가 5년 전인 97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하이닉스 매각 표류는 97년 기아자동차 사태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많은 법안이 이익단체의 반발에 부닥치고 있는 것도 5년 전과 같습니다. 97년 기아사태를 겪었으면서도 학습 효과를 별로 거두지 못한 것이지요.

▶김수길=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한국의 외환위기를 '불행으로 가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이번에야말로 구조조정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라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DJ 노믹스 실록 연재를 끝내며 드는 생각은 '우리는 그 기회를 1백% 살리는 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요즘 정치권·정부·이익집단의 행태를 보면 다들 외환위기 때의 초심(初心)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글 실은 순서

1부:금고가 비었습디다

1회 DJ의 면접시험

2회 외채협상-한숨돌리는 DJ

3회 경제國保委-비대위의 재벌개혁

4회 DJ의 첫 경제팀-중경회와 관료들

5회 DJ와 IMF재협상

2부:도와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6회 용병 소방대장 이헌재

7회 깨어진 '은행 不死'신화

8회 막 오른 은행합병 上

9회 막 오른 은행합병 下1

0회 금융구조조정의 복병-한남투신

11회 제일은행 해외매각

12회 사연많은 대한생명 매각 上

13회 사연많은 대한생명 매각 下

14회 1차 기업퇴출

15회 부실기업 수술-워크아웃

16회 공기업 민영화

17회 정리해고와 현대차 파업

18회 정부조직 개편

19회 빅딜 上

20회 빅딜 中

21회 빅딜 下

22회 성장신화 大宇의 몰락1

23회 성장신화 大宇의 몰락2

24회 성장신화 大宇의 몰락3

25회 성장신화 大宇의 몰락4

26회 성장신화 大宇의 몰락5

3부:IMF 졸업했습니다

27회 불패신화 現代의 좌절1

28회 불패신화 現代의 좌절2

29회 불패신화 現代의 좌절3

30회 불패신화 現代의 좌절4

31회 불패신화 現代의 좌절5

32회 말도 탈도 많은 公자금

33회 시늉만 낸 2차 기업퇴출

4부:경제엔 임기가 없다

34회 국민·주택은행 합병

35회 피곤한 개혁-의약분업1

36회 피곤한 개혁-의약분업2

37회 피곤한 개혁-의약분업3

38회 건보통합·재정파탄

39회 기초생활보장제

(이 기사는 www.joins.com에 접속해 경제→기획기사를 클릭하시면 전편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올 1월 3일부터 연재를 한 '미완의 개혁-국민의 정부 경제 실록'을 40회로 마칩니다. 성원을 보내주셨던 독자 여러분과, 취재에 성실히 응해주셨던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간 연재했던 내용을 더욱 충실히 보완해 곧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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