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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시민단체에 잇단 진정 "수사기관 가혹행위 나도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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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3년 전 수뢰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李모(59)씨는 최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당시 구청장 신분이었던 그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면서 "연행된 뒤 36시간 동안 밤샘조사를 받았으며, 조사 중 무릎으로 옆구리를 찍는 등 구타를 당했고, '벽 보고 서 있기''쪼그려 앉기' 등 계속된 가혹행위 때문에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정서에 적었다. 그는 "아들 또래의 수사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느낀 모욕감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지난달 발생한 서울지검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와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강압수사와 관련한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검찰과 관련한 진정사건 2백69건을 분석한 결과 고문 등 수사관의 가혹행위에 대한 진정이 전체의 7.4%(20건)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단체인 인권실천시민연대 측도 10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에 대한 상담 및 법률 지원 활동을 시작한 1999년 이후 하루 평균 한건 이상의 상담이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최근에 접수된 사례만도 모 정부투자기관 직원의 경우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가 48시간 조사받는 과정에서 잠을 네시간 정도만 잤으며, 시민 양모씨는 "길을 가던 중 검찰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봉고차 안에서 구타 등으로 범행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상담 사례의 대부분이 조사 과정에서 당한 구타·욕설·기합 등이었으며, 물고문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지만 피의자가 법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펴낸 '2000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6월 경기 안산경찰서 측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중국인 노동자 위모(29·여) 등 4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혁대와 몽둥이로 구타한 사실이 뒤늦게 감찰에서 적발돼 관련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찬운 변호사는 "경찰의 가혹수사도 문제지만 검찰에서의 자백은 재판 과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강압에 의한 자백 조서가 더 심각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수사과정 전반에 대해 법원이 통제하는 영국·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원의 역할이 너무 작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혜신 기자

hyaes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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