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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운드에 영혼을 입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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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1999년 가을, 몸에 카메라도 지니지 않은 채 희열(유희열)·종신(윤종신)과 함께 일본에 갔다. 여행의 목적은 맛있는거 많이 먹고 오기…. 얼마나 심심했으면 종신은 자버리고 희열은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일거리들, 돈 안되는 일에 대해 얘기하고 나 또한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새벽쯤 우린 제목만 거창한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프로젝트를 계획한다…."(안성진, 사진집 서문에서)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들의 작은 '문화혁명'은 이제서야 첫 결실을 보았다. "게으름 때문이죠"라며 두 사람은 멋적게 웃는다. 부끄러움보다는 '이제라도 해냈다'는 자부심이 은근히 묻어나는 웃음이다.

Toy 유희열(31)과 사진작가 안성진(35)씨가 사진집과 음반을 함께 담은 프로젝트 앨범 '어 워크 어라운드 더 코너'(A Walk Around the Corner)를 냈다. '어 워크…'는 모두 13곡이 실린 CD와 1백40여 페이지에 이르는 사진집.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장르의 음악을 시도한데다, 13개 팀의 각각 다른 아티스트, 그리고 국내에서는 역시 그리 인기 매체가 아닌 사진집을 함께 내놓았다는 점에서 도전적이다.

일렉트로니카는 말 그대로 전자음을 많이 써서 만들어내는 음악. 일명 '테크노 음악'의 하나로 기계음이 많아 차갑게 들릴 수 있고, 반복되는 리듬이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일렉트로니카라는 말에 잠시 유행하다 사라진 '테크노'를 떠올린다면, 그 장르가 주는 풍부하고 색다른 재미를 놓치기 쉽다.

"일렉트로니카는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죠. 그런만큼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몰린 장르이기도 해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너무 감각적인 노래만 뜨다 보니 소개되는 장르가 매우 협소한 거 같아요. 새로운 장르를 보다 대중적으로 공급하고 싶었어요."

앨범 프로듀서로 참여한 유희열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에서 알음알음으로 찾아낸 이 분야 전문가들을 '음지의 고수들'이라고 불렀다. 팬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일렉트로니카에 열정을 바쳐 고수의 경지에 이른 고독한 프로들. 그러나 세상과 소통할 통로가 없어 '은둔자'처럼 지내온 이들이란 뜻이다.

세인트 바이너리의 '일루전', 루시드 폴의 '몽유도원', 프렉탈의 '수에노', 전자맨의 'n.y.c', 웨어 더 스토리 엔즈'의 '벨벳 크러시' 등 각각 색깔이 다른 곡들을 만날 수 있다.

일렉트로니카라는 생소한 이름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어뜨릴만큼 신선하게 들린다. 새로운 음악을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반가울 듯하다.

안성진(잼 스튜디오 대표)의 사진집 역시 또 하나의 도전이다. 책·음반과 달리 대중과 거리가 먼 '사진'이란 예술장르를 바짝 우리 곁으로 끌어당겨 보겠다는 욕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안성진은 Toy·박정현·이수영·윤종신·이승환·롤러코스터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의 앨범 재킷 사진을 찍어온 프로다.

"출장을 가서도 짬이 날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휴식'이란 말을 사랑한다. 우리 프로젝트 제목에 '코너'(모퉁이)가 들어간 것도 일과 휴식 사이의 가슴 설레는 모퉁이를 강조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희열이 말하는 대로 그의 사진은 파격적이지도, 인공적이지도 않다. 한마디로 아날로그적이다.

유희열은 "그가 많은 도시 사진을 찍었고, 이번 음반이 디지털 사운드로 채워졌지만 '따뜻함'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번엔 도시와 자연의 풍경 사진만 소개하고, 사람 사진은 앞으로의 사진집을 위해 남겨놓았다. '어 워크…'가 그들에겐 '작은 첫 걸음'이다.

◇'일렉트로니카'란='테크노'는 일반적으로 모든 전자음악을 통칭한다. 이중에서 '일렉트로니카'는 클럽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댄스 비트의 음악을 배제한 전자음악을 가리킨다. 일렉트로니카에는 느린 템포의 곡도 있고, 노래가 들어간 곡들도 있어 같은 테크노의 다른 장르보다 다소 덜 자극적인 편이다. 국내에서는 Toy 유희열 외에 신해철 등이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선보이고 있고, 이번 음반 '어 워크…'에 참여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있다. 해외 아티스트로는 케미컬 브러더스(테크노 일렉트로니카), 팻보이슬림 (크로스오버 일렉트로니카)등이 유명하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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