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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대사 릴레이 인터뷰] 4. "미·북 상호불신이 북핵해결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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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테이무라스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대사를 만나 북한 핵 문제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정동 러시아 대사관저에서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근 들어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부쩍 늘고 있다. 붕괴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붕괴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한국 정부의 견해에 동의한다. 북한 주민의 동의와 지지 없이 외부 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체제 변화는 있을 수 없다. 점진적인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체제가 갑자기 무너져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돼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미국이 개입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러시아의 입장은 무엇인가.

"국제분쟁에 대해 러시아는 확립된 입장을 갖고 있다. 사전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첫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 분쟁이 발생할 경우 문제를 찾아내 초기 단계에서 분쟁이 종식되도록 중재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시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곧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보는가. 6자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곧 재개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지난번 6자회담에서 내놓은 미국의 제안은 협상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핵개발을 포기할 경우 북한이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에 대해 더욱 분명한 그림을 제시하고,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북핵 문제는 해결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과 북한이 서로의 진심을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호 신뢰가 결여돼 있다는 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협상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수사(修辭)다. 이 점에서 미국이 더욱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면 의외의 진전이 있을 수 있다."

-6자회담이 실패할 경우 유엔 안보리로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압력으로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대북 제재를 목적으로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는 일부 견해에 러시아는 반대한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미래는 물론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장래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성급한 조치를 취할 경우 NPT 체제가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통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가스전과 유전 개발 사업에 한국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안했다. 우주개발과 관련해서도 단순히 한국인을 우주선에 보내는 차원이 아니라 기술적 협력에 합의했다는 점은 중요한 성과다."

-러시아 정부가 최근 동북아 송유관 건설 노선을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확정함으로써 중국과 함께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을 추진해온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협력이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하다.

"명백한 오보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과 동북아 송유관 건설은 전혀 별개의 사업이다. 당초 중국.일본.한국으로 각각 가는 2~3개의 송유관을 건설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예상 산유량을 고려할 때 비경제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결국 동시베리아 타이셰트에서 나홋카로 가는 하나의 대형 송유관을 건설하고, 거기서 중국과 한국 등 각 방향으로 가는 지선을 건설키로 한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잇는 사업은 어떤 상태인가.

"남북한과 러시아 3국 전문가들이 몇 차례 만났지만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6자회담의 결과에 진전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본다."

-동북아 안보협의체 구상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은.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모델로 10년 전 이 구상을 처음 제시한 나라가 러시아였다. 6자회담이 결실을 거둔다면 6자회담은 동북아 안보협의체 결성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난 사람= 배명복 국제문제담당기자<bmbmb@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라미슈빌리 대사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대여섯잔쯤 될 걸요. "

라미슈빌리 대사(49)는 "어제도 폭탄주를 마셨다"며 보드카로 단련된 술실력을 은근히 과시했다. 러시아에도 "맥주에 보드카를 섞은 요르시라는 폭탄주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뒤 1981년 옛소련 외교부 조약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주로 국제기구를 담당해 유엔 기구가 있는 뉴욕과 제네바에서 일하기도 했다. 99년부터 러시아 외교부 인도지원 및 인권담당 국장으로 있다가 2001년 5월 주한대사로 부임했다.

"외교관에게 전공은 없다"면서도 "굳이 따지면 다자협상이 내 전공"이라고 말했다. 설악산을 특히 좋아해 스무번 가까이 찾았고, 서울에서는 인사동을 자주 방문한다. 모스크바에 부인과 대학생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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