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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탐구:연탄산업>애환 어린 '검은 연료' 남은 수명 길면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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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경기도 하남 화훼단지의 김성도(58·농업)씨는 지난해 하루 평균 2백장씩 쓰던 온실 난방용 연탄을 요즘은 4백여장으로 늘렸다. 2천여평의 비닐하우스에 기름·연탄 겸용 보일러를 설치하고 관엽식물을 재배해온 그는 최근 경유값이 올라 아예 연탄만 쓰기로 했다.

화훼단지뿐만 아니라 달동네 등 서민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연탄 소비가 꾸준하다. 이쪽에선 아직도 연탄의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탄업종은 외환위기 같은 때 반짝 수요가 있긴 했어도 대표적 사양사업의 하나로 꼽힌다. 정부도 석탄산업을 키울 생각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도 현재 연탄 소비량을 산업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업·화력발전소 등 일부 산업과 저소득 계층의 값싼 연료의 필요성이 있지만 연탄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0년 정도라는 것이다.

◇서민 연료로 명맥 유지=서울시가 지난해 말 단독·공동주택 등을 포함한 시내 전 가구(3백57만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정용 연료 사용 현황 조사결과 연탄 사용 가구는 2000년 1만8천가구에서 1만가구로 44% 줄었다. 반면 도시가스를 쓰는 가구가 크게 늘어 전체의 77%(2백66만3천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연탄 사용 지역은 주로 ▶동대문구 전농2동, 답십리5동, 제기1동▶동작구 상도4동, 흑석3동▶용산구 한강로2·3동▶노원구 상계1·3동 등 으로 여전히 소외계층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연탄 수요는 서울의 소외지역이 전체의 18%로 가장 많다. 연탄 생산량으로 살펴보면 1986년 2천4백25만t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아파트 등 주택개량 사업이 가속화하면서 해마다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연탄이 이같은 수요감소 추세 속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어떤 에너지원보다도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연탄가격은 88년 정부의 연탄가격 동결 이래 14년째 1백88원(공장도 가격은 1백67.25원)을 유지하고 있다. 연탄 생산업체는 대신 정부에서 장당 1백40.75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경유 가격이 ℓ당 7백원 내외인데 비해 연탄(21공탄) 한장 값은 배달비를 포함해 2백50∼3백원이다. 똑같은 열효율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하면 1백(경유)대 67(연탄) 정도가 되는 셈이다.

연탄 공장은 80년대 중반만 해도 서울에 17군데가 있었다. 이제는 삼천리에서 분사한 이문동 삼천리ene와 금천구의 고명산업 단 두곳만 남았다. 68년 문을 연 삼천리 이문동 공장은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이 공장은 86년 하루 3백만장을 생산해 단일 공장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하루평균 40만장에 그치고 있다.

연탄업계는 이외에도 배달난에 시달리고 있다. 연탄산업의 사양화로 대리점이 거의 사라져버려 직접 인력·차량을 구해 소비자에게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탄 한장(19∼21개의 구멍)의 무게는 3.6㎏이나 된다.

연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으로 유지하는 연탄산업이 서민 연료이기때문에 겨우 버티고 있지만 인력난에다 대리점이 없어진 관계로 배달난이 심각해 버티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석탄산업과 김재홍 과장은 "연탄은 가스 등 고급 연료로 대체되고 있는 데다 국내 가격이 국제가보다 두배 정도 비싸 사양화가 불가피하다"며 "산업의 충격을 최소하기 위해 2005년까지 연탄(1백만t 이내)과 산업용 연료(2백만t 이내)를 합해 3백만t 이내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용도 사양화=국내 석탄산업은 연탄이 대표적인 무연탄과, 발전용으로 주로 쓰이는 유연탄으로 나뉜다.

올해 무연탄 시장 규모는 4백만t 정도다. 이중 연탄이 1백20만t 이고 10만t은 산업용 연료, 2백70만t이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쓰인다.

무연탄은 강원도 태백·정선, 전남 화순, 경북 문경, 충북 보은 지역의 10개 탄광에서 생산하고 있다.

무연탄을 가공한 연탄은 86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10∼20%씩 감소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겪던 2000년 1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백19만t으로 99년보다 6% 정도 증가한 이래 지난해에도 3%(1백22만t) 생산이 늘었다. 올해는 다시 1백10만t(3억장)대로 10% 정도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주택 개량으로 달동네가 줄면서 매년 5∼10% 정도 수요가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연탄의 경우 호주·중국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올해 시장규모는 6천5백만t이다. 이중 4천만t이 화력발전소에서, 2천만t은 포항제철 등 제철소에 사용한다. 나머지 5백만t은 시멘트 회사에서 쓰고 있다. 유연탄은 무연탄 가격의 33%에 불과한 이점 때문에 해마다 수입 물량이 5% 정도씩 늘고 있다. 한국전력에서 비싼 무연탄 대신 유연탄용 화력발전소만 짓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대한석탄협회 조정구 부장은 "국내 석탄사업은 농가와 저개발 지역으로 대표되는 뚜렷한 사양산업"이라며 "길게 봐야 10년 정도 최소 생산량을 유지하겠지만 사양화를 막을 수 없는 게 대세"라고 말한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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