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두고 개성공단 착공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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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쪽 주요 산업시설을 둘러본 북측 경제시찰단이 어제 동남아 시찰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난 가운데 남북은 최근 평양에서 오는 12월에 개성공단 건설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정황만 보면 남북 간에는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매우 위험스럽다. 북핵 문제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합의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남측이 개성공단 건설에 착수하면 그것은 남북 경제협력의 실질적 증표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남북 간에 대결과 위협의 갈등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남측이 북측의 피폐한 경제를 살려 북측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길이 남북 공존과 민족 이익에 부합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북핵이 존재하고 안보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공단 진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핵문제의 조기 해결 없이 개성공단 건설의 착수가 어려운 현실적 이유다.

개성공단의 또 다른 문제는 남측의 추진 주체다. 북측이 선정한 현대아산은 사실상 경영난에 빠져 있다. 더욱이 대북 4천억원의 비밀지원 의혹을 받는 관련 업체다. 이런 부실 및 의혹투성이의 사업 주체가 남북경협의 모델사업을 담당할 때 입주업체들이 신뢰성을 가질지가 의심스럽다. 정부는 토지공사 단독으로 또는 새 기구를 만들어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북측과 다시 협의해야 할 것이다.

미합의 사항 중 북측이 최저 임금수준을 베트남이나 중국보다 높은 월 1백달러나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영세한 중소기업이 주종인 대상업체의 특성을 감안할 때 베트남 수준(월 50∼60달러)에서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조설립도 일정 기간 이후 허용돼야 한다. "남측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겠다"는 북측 약속이 사실이라면 북측은 무엇보다 핵문제의 우선 해결이 그 첩경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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