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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隱者들의 삶과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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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고도로 발달된 기계문명 속에서 현대인의 사회생활 성패는 인간관계의 양과 질에 크게 좌우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이란 명제는 너무 당연시되고 대인관계·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온갖 실용서가 쏟아진다. 이젠 사회적 압력으로까지 여겨지다 보니 복잡다기한 인간관계의 부담감을 털고 홀로 있고 싶어질 지경이다. 이 책은 이럴 때 유용하다.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이다. 절대로 허위를 참아주지 않는다"는 은자의 삶을, 그들의 일화·가르침을 통해 분석·조명한 것이다.

물론 저자가 영국인인 만큼, 노장(老莊)사상을 화두로 삼았지만 서양의 은자들 이야기 위주다. 인도 출신의 라마크리슈나도 나오지만 그의 가르침이 서양에서부터 각광을 받았다는 점에서 포함된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크라테스는 "사치와 무절제가 깊어지면 혁명과 전제정치를 부른다"며 금욕주의를 설파하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생활했지만 은자로 친다. 성 안토니 등 황야의 교부들은 사막에서 홀로 구도생활을 했고 레오니드 등 스타레츠(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지도자)들 역시 엄격한 질서와 금욕적인 수도생활로 러시아인의 삶의 길잡이가 되었다. 시민불복종과 생태주의 운동에 큰 영감을 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 힌두교 가르침을 현대화하면서 모든 종교의 조화를 강조한 라마크리슈나도 2천년 은둔의 역사에서 위대한 은자들로 꼽힌다. 현대의 은자라 할 토머스 머튼· 로버트 랙스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은자는 현실도피자나 초월자들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시련을 택하고 이를 통해 삶의 지혜와 통찰을 얻고자 한 나름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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