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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마라톤동호회 ‘아름다운 도전’ 1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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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뜨고 지는 해를 새해 첫날이라고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던 나도 새 천년 일출은 특별한 의미와 미지의 힘이 전달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밤새 기억할 수 없는 꿈과 실랑이하고 아직 어둠이 깨지 않은 산길을 향해 걸었다.

태조산 정상에는 이미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기원하기 위해 어둠이 가시지 않은 먼 동쪽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모두들 누가 준비했는지 쥐고 있는 풍선에 소원을 쓰기 시작하였다. ‘아이’ ‘튼튼’ ‘취직’ 등 소원의 글을 보면서 나도 노란 풍선위에 ‘건강’이란 두 글자를 크게 적었다.

2008년 독립기념관 유관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마라톤동호회 회원들. 성무용 천안시장(뒷줄 가운데)이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았다. [천안시청마라톤동호회 제공]

며칠 후 나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우선 하루 30분 정도 아침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운동장에 나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걷고,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두 바퀴를 돌자 숨이 헐떡이고,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허공을 내딛는 것 같으며, 휘청거리는 내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내 몸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접근하기 좋은 운동은 달리기뿐이라고 생각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체육복과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든지 달릴 수 있고 능력에 따라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고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한 유산소 운동이 된다. 이왕이면 혼자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면 모든 것이 더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마라톤을 같이 해보자는 말에 모두들 “너나 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더 이상의 이야기는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고 일과시간 후에 “운동 간다” 한마디만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처음 얼마는 오늘 처리한 일들을 생각하며 달릴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을 지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고 오직 거친 숨과 달린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고, 잘못한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마음이 생겼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혼자 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웃기는 일이라고 하던 동료들이 동참해 주었다. 출발 할 때는 “이쯤이야”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동료들이 어느 정도 지나자 말소리가 점점 없어지고 조용한 침묵 속에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들렸다. “도저히 더 이상은 못 뛰고 걸어야겠다”라는 소리에 “힘든 것은 누구나 똑같은 거야. 여기서 주저 않으면 안 된다”고 격려하며 걷지 않고 우리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현관 앞에서 퇴근하지 않았던 직원들의 환호와 박수소리는 시원한 폭포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끝까지 달린 동료들은 “이런 기분 처음이다” “너무 좋다”며 성취감을 토해냈다. 그리고 “내가 이 정도였던가?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다”며 힘들어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동료들이 나보다 점점 더 달리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사무실 분위기도 웃음이 넘치고 활기차게 바뀌었다. 민원인들도 밝은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에 오면 살아있는 사무실 분위기를 느낀다면서 좋아했다.

달리기를 한다는 소문이 전 시청내로 확산되어 어떻게 달리기를 하느냐 등 관심의 중심에 서자, 직원 동료들도 기분이 좋아서 그동안의 체험을 자랑스럽게 알려주었다.

마라톤동호회를 만들어서 지역축제 등을 알려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꿈을 창조하고 꿈에 도전하고 꿈을 이룬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함께 운동하며 건강 동반자가 되자는 글을 올리자 많은 동료들이 호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암절제 수술을 받고 복직한 직원이 찾아와 달리기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운동하면서 더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우리는 비록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연습은 하지 못하였지만 주중에는 각자 여유시간을 이용했고 휴일 아침에는 함께 모여 달렸다.

도전과 희망이라는 삶의 변화를 느끼기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우리는 처음 만든 ‘천안시청’로고와 자기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고 이리저리 펼쳐보고, 입어보면서 대표선수가 된 것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첫 대회에 5㎞ 25명, 10㎞ 5명, 하프 3명이 신청했다. 금주령을 내리고 주말이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신과의 전쟁을 치루기 위한 준비를 했다.

손덕성씨 뛰는 모습이 담겨진 서울마라톤대회 기록증.

드디어 마라톤대회 날 아침, 표정은 전투에 나가는 투사들 같아 보였다. 모자와 신발을 챙기고 썬 크림을 바르고 출발 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모습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다짐하는 표정에서 강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출발 총소리에 맞춰 모두 출발했다. 처음 연습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모두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습한 페이스대로 달리자”며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달렸다.

결과는 전원 완주. 먼저 들어온 동료들이 물병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환호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암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5㎞에 참가해 비틀거리면서 골인지점을 들어오는 동료를 보았을 때 우리 모두 그 어떤 감동의 드라마 보다 진하고 짜릿한 마음 속 전율을 느끼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 못지않은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도전에 대한 값진 선물이었다. 건강으로 자신을 정복한 자랑스런 모습이었다.

그 후 더 큰 목표를 설정하고 2002년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40명이 도전해 모두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인 지금 회원 170여 명으로 늘어났다.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는 회원과 풀코스 100회 출전하는 마라톤 매니어가 나왔다. 처음 5㎞도 힘들어 했던 동료들이 지금은 모두가 풀코스를 자신있게 완주한다. 마라톤을 통해 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료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더 즐겁게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우리 가슴엔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 자신감과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할 것이다. 꿈을 창조하고 꿈에 도전하고 꿈을 이루는 천안시청마라톤동호회. 오늘도 내일도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된다.

글=손덕성(천안시 동남구청 세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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