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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행차 뒤 나팔' 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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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땅값상승 과열 조짐에 따라 수도권의 70% 가까이를 추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그래 봤자 곳곳에 잇따른 개발사업으로 수도권엔 한차례 투기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여서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꼴'이 안되면 다행이다.

땅값상승 과열 조짐은 수도권의 아파트가격이 치솟고 갈 곳 모르는 뭉칫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땅값은 지난 3분기에 평균 3.3%가 상승,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서울 강남은 전국 최고로 8.6%가 올랐다. 평균 지가가 이 정도 상승했다면 국지적으로는 2∼3배 오른 곳도 적지 않다는 게 국민 누구나가 느끼는 그간의 경험이다. 실제 서울의 뉴타운지역은 개발발표 1주일 남짓에 50%나 급등했고 그나마 매물을 거두어 가기 바쁘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최근 들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개발계획을 둘러싼 마찰은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이번 서울시의 정릉·길음, 상왕십리, 은평지역 등 뉴타운개발만 하더라도 사업을 잘 하려면 투기방지책을 미리 마련해 내놓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땅값이 뛰자 부랴부랴 토지거래허가제를 발동하는 꼴불견을 보여주었다. 이러고도 제대로 된 정책조율이라 하겠는가. 중앙과 지방정부 간에 정책조율이 원만치 못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뿐이다.

외환위기는 사회 전체에 타격을 주었지만 부동산에 관한 한 땅값하락으로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치료할 계기를 터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분기 전국 땅값은 1996년 말 대비 96.9%에 다다라 외환위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정부가 부동산경기를 지나치게 부추긴 결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부동산 안정의 꿈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아파트값 상승이 잠시 주춤했다고 부동산 열풍을 안도하기엔 이르다. 부동산 거품이 경제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의 일관성 유지는 물론 투기대책 마련에 더 이상 실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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