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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서쪽 사촌 부러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크리스토프 비켄바흐. 올해 32세인 그는 1990년 통일 직후 베를린 남쪽 1백㎞ 지점에 있는 고향(브란덴부르크주 게렌)을 떠나 서베를린으로 이주했다.

-왜 고향을 떠났나.

"일단 무작정 서쪽으로 왔다. 어느날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지만 동쪽에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무엇보다 서쪽에선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맘에 들었다."

-동쪽에도 대학이 있었는데.

"동독 시절 나는 대학엘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반체제 목사로 요시찰 인물이었기 때문에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가야 했다."

-무작정 서쪽으로 가는데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았나.

"오히려 적극 밀어줬다. 아버지 형제들이 쾰른·브레멘 등 서독 여러 곳에 살고 있어 통일 전부터 서쪽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잘 사는 서쪽의 사촌들이 무척 부러웠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에서 다시 1년간 공부한 뒤 91년 베를린 자유대에 들어가 수학과 스포츠를 공부했다. 그러나 방황의 연속이었다. 8학기를 마치고 95년 학업을 중단한 뒤 건축설계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러나 설계일을 하다 보니 기초가 달렸다. 다시 베를린예술대 건축학과에 들어가 현재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나.

"설계와 건설회사의 감리직을 맡고 있다. 수입을 일률적으로 말하긴 곤란하지만 일이 많을 때는 1년에 5만유로(약 6천만원)정도, 일이 없을 때는 3만유로 정도 번다."

-돈이 모자라지는 않나.

"결혼은 안했지만 일곱살 난 딸이 하나 있다. 둘이 사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가끔 고향을 찾아가 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아버지(67)에게 용돈을 주기도 한다."

-고향 마을의 분위기는 어떤가.

"나같은 젊은이들은 다 빠져나오고 대부분 노인들뿐이다. 인구가 한때 5백여명이었지만 요즘은 3백명 정도로 줄었다. 통일 전엔 이웃들과 사이가 좋았는데 요즘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서인지 사이가 멀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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