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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고 캐면 '私債 넝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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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형 경제범죄의 배후에는 대체로 사채(私債) 자금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달 30일 검찰이 1조원대 규모 사채 비리를 캐내는 데 기여한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실제 대형 금융사고에는 '사채 자금줄'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1982년의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2000년 정현준·이경자 불법대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형 사채업=사채는 개인 사채(소비자 금융)와 기업 사채(비소비자 금융)로 나뉜다. 개인 사채도 폭력행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만 대형 사고가 터지는 곳은 주로 기업 사채 쪽이다.

기업 사채는 기업의 어음·채권을 할인해 주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하는 형태다. 또 불법적인 용도에 자금을 빌려주기도 한다. 이번에 구속된 반재봉씨는 회사 설립 자본금 또는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한 것처럼 꾸며주고 수수료를 챙겼다.

사채시장 규모는 '지하경제'인 만큼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지만 4백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추정이다. 잔액 기준이 아니라 일년 동안 누적된 금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중 개인 사채는 80조원, 나머지 3백20조원이 기업 사채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대부업법 때문에 개인 사채 중 상당 부분이 기업 사채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3천만원 이하 대출에 대해 연 66% 이상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부사업자연합회 유세형 회장은 "개인 사채가 이자 제한을 안받는 기업 사채로 옮겨갈 경우 금융 사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기업 사채도 시·도에 등록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등록하지 않은 업체가 훨씬 많은 실정이다. 柳회장은 "불법행위를 하는 기업형 업체가 3백개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증시에서도 판치는 사채=더욱 우려되는 것은 사채자금이 증권시장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가조작에 동원되는 사채자금이 문제다.

증권업협회의 한 간부는 "사채자금을 끌어다 쓴 정현준씨의 동방금고 사건에서 보듯 코스닥시장의 비극은 사채자금에서 비롯됐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사냥꾼이 사채를 빌려 부실기업을 사들인 뒤 높은 이율의 사채를 갚기 위해 무리하게 주가를 조작하는 바람에 코스닥시장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종우 미래에셋 운용전략실장은 "시세조종 직전보다 주가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예 부실기업에 대한 투자를 자제하는 게 손해도 막고 부실기업을 스스로 퇴출시키는 방안"이라고 했다.

◇단속 강화에 나섰지만=금감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채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대부업법 시행으로 금감원에 사채업체 검사권이 생긴 만큼 불법행위를 철저히 뿌리뽑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에는 주도적인 단속권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사채업체 검사도 시·도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노태식 비은행감독국장은 "금감원에 사채업체 처벌 권한이 없어 주도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사채업자의 약점인 탈세부분을 국세청이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선구 기자

su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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