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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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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밤이 늦어서야 도반의 암자에 도착했다. 암자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암자의 작은 도량에 서서 손에 든 전등을 끄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그만 "아" 하고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총총히 불 밝힌 별들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의 잔치였다. 세상의 모든 별이 다 이곳 산중에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밝아 가까워 보이는 별. 발돋움을 하면 손에 잡힐 것만 같이 별은 가까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 서서 나는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았다. 물소리마저 잠든 겨울 암자에서는 별이 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도량을 거닐며 별은 어떤 소리로 내게 다가오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물소리, 아니면 바람소리? 문득 풍경소리가 떠올랐다. 미풍이 불 때마다 가볍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타고 별은 내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풍경소리를 떠올리며 별이 내게 다가와 내리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작은 소리로 풍경이 울 때마다 하늘에서부터 잔잔히 내려와 내 가슴에 쌓이는 별. 그 순간 나는 마치 하늘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늘이 내가 되고 내가 하늘이 된 그 순간 나는 '우주적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알 것만 같았다.

출가하고 나서 내가 들은 말씀 가운데 가장 가슴에 남는 건 우주와 너는 하나이니 큰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은 존재였다. 생각은 일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육신은 내가 기대어 살고 있는 산에 견주어 봐도 턱없이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수시로 졸음은 찾아와 수행 생활을 흐렸고 때가 되면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먹어야 하는 내게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얼핏 알 것도 같지만 그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우주는 크고 고상하고 나는 작고 저급하다는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출가 초기에 내게 그 말씀은 화두가 되었다. 나는 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조급증이 날 때마다 스승을 바라보았지만 스승은 내게 아무런 말씀도 건네지 않았다. 내가 눈길을 보낼 때마다 등 돌리던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깨쳐야 하는 것이 진리의 세계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산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그 말씀을 떠올리고는 했다. 좌복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답들이 산길을 걸을 때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특히 봄날 산등성이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그리고 투명한 미풍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나는 알 수 없는 설렘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그런 느낌은 우주와 내가 어떻게 하나이고 우주적 큰 삶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느낌을 통해 작은 나를 벗어나는 길을 보고는 했던 것이다.

어렴풋이 와 닿던 우주적 큰 삶의 의미를 오늘 밤 나는 가슴으로 좀더 확연하게 느끼고 있다. 물론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늘 밤 별만큼이나 밝게만 다가온다.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환호할 수 있을 때, 작고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에 깊은 연민을 가지고 다가설 때 비로소 우주적 큰 삶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오늘 밤 별은 일깨워 준다. 아무런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떨어져 고립돼 있는 존재일 수는 없게 된다. 그 마음에는 이미 연민과 아름다움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진리에 눈뜨게 한다.

별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때마다 빛은 내게 다가와 내 작은 삶의 어둠을 지운다. 내 삶의 크기는 얼마일까. 밤하늘에는 내 꿈 하나도 별들과 더불어 총총히 빛나고 있다.

성전 스님

◆ 약력=충남 서산시 부석사 거주. 해인지 편집장 역임. 저서:'빈손'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