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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5) ‘패자(覇者)독식의 경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주 CEO 대상 강연을 한 곳 다녀왔습니다. '중국 금융/자본시장 변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이 주제였지요. 얘기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려는 데 한 참석자가 묻습니다.

"다 좋은데, 그렇다면 중국 경제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저의 강연 내용이 대체적으로 중국 경제를 낙관했기에, 그 반발로 나온 질문인 듯 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중 대표적인 게 '빈부격차'입니다. 중국을 방문해 보신 분이라면 그 실상을 잘 아실겁니다. 개혁개방 초기 농촌과 도시 주민 소득비율은 1대 1.9였습니다만, 지금은 1대 3.3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발전할 수록 소득격차가 벌어집니다. '부정부패'도 심각합니다. 중앙-지방 가릴 것 없이 터지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중국 법정이 복잡합니다. 중국 신문 떠들어보세요.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기후도 문제고, 턱없이 부족한 자원도 중국경제 성장을 잡을 아킬레스건입니다. 제도 미비 역시 중국경제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이 정도 답했다고 칩시다.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노(NO)! 요즘 청중 똑똑합니다. 게다가 CEO라면 웃을 겁니다. 그건 50점 짜리 강사의 답변일 뿐이니까요. 좀더 크리티컬(Critical)한 것을 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중국경제에 내공이 있는 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시작해보겠습니다.

중국 경제는 '패자(覇者) 독식의 구조'입니다. 센놈이 약한 놈의 것을 끊임없이 빼앗아 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자리잡고 있지요. 약자는 죽어라 일해 번 부(富)를 자기도 모르게 빼앗깁니다. '빈부격차의 제도적 고착화'라고나 할까요. 하나하나 따져보지요.

우선 은행.

중국은 금리 자유화가 안 된 나라입니다. 정부가 틀어 쥐고 있지요. 1996년만 하더라도 예금이자는 10%안팎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1999년 말 2%대로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그 수준입니다. 지금 기준금리로 통하는 1년만기 예금금리는 2.25%, 대출금리는 5.31%입니다.

중국에 돈 무작 많습니다. 걸핏하면 버블이요, 그 버블을 끄겠다고 긴축 조치를 내립니다. 돈이 많으니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고, 증시는 출렁입니다. 2000년대 들어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금리는 턱없이 낮습니다.

누가 덕보겠습니까?

기업입니다. 싼 값으로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까요. 4대 상업은행(중국, 농업, 건설, 공상)이 금융권 대출 자산의 70%를 차지합니다. 이들 은행은 주로 국유기업을 상대합니다. 민영기업은 안중에도 없지요. 내부 거래도 있습니다. 국유은행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국유기업에 턱없이 낮은 금리로 돈을 내주기도 합니다. 국유기업과 국유은행, 그리고 국가의 '3각 결탁'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누가 피해보겠습니까?

개인입니다. 돈 값을 재대로 받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돈이 생기면 은행으로 갑니다. 인플레로 인해 실질 예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도 은행에 돈을 맞깁니다. 그래도 믿은 것은 은행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죠.

그 사이에 낀 은행도 짭잘하게 돈을 챙깁니다. 상업은행의 예대마진율은 1~2%포인트선입니다. 선진국일수록 낮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3%가 넘습니다. 이는 공식 예대마진율일 뿐, 일부 지방 중소은행은 6%에 이르는 곳도 있습니다. 돈놓고 돈먹기 식입니다. 인중리(尹中立)사회과학원 금융시장연구실 부실장은 "2009년 상장기업의 연간보고서를 보면 14개 상장은행의 이윤이 전체 상장기업 총 이윤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민간의 부가 국유기업, 국유은행, 그리고 국가로 몰리고 있는 겁니다.

둘째 주식시장.

중국경제의 '양심'이라는 우징롄(吳敬璉)교수는 중국증시를 '거대한 도박장'이라고 했습니다. 내부자거래, 허위 공시 등이 판을 치는 부패의 온상이라는 것이지요. 애매한 개미들만 당하는 구조입니다.

중국이 1990년 말 증시를 설립한 첫 이유는 국유기업 개혁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가-기업의 소유형태를 기존 '국영(국가경영)'체제에서 '국유(국가소유)'형태로 바꾸게 됩니다. 국가는 지분의 형태로 기업을 소유했고, 그래서 주식이 생겼습니다. 국가가 갖고 있던 주식 중 약 30%를 풀어 민간에 풀기로 했습니다. 주식시장을 만든 이윱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증시는 국가가 민간의 돈을 빨아들이는 합법적인 통로'였지요.

주식시장 설립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요? 아닙니다. 지금도 그 구조는 변한 게 없습니다. 지금도 주식개혁이 한창입니다. 비(非)유통주 개혁 말입니다. 그 논리는 간단합니다. '설립 초기 풀지 않았던 국유기업 주식 70%를 이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겁니다.그게 2005년 시작된 주식개혁(股改)입니다. 지금도 주가가 오를만 하면 비유통주가 시장에 쏟아져 나와 자금을 걷어갑니다. 그 걷어가는 주체가 국가의 위임을 받은 국유기업입니다. 국가가 증시를 통해 민간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중국증시와 관련해서는 최근 출판된 '중국증시 콘서트(올림출판, 한우덕 지음)'를 참고하십시요. 중국증시의 설립에서부터 비유통주 개혁, 부정부패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증시의 내막을 들여다 본 책입니다. '중국인도 모르는 상하이 증시 얘기'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중국증시는 국유기업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전시장을 중심으로 민영기업의 상장이 늘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도 중국 주식시장의 80%(시가총액)이상은 국유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오를 수록 국유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중국증시의 상장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장회사의 발행가격은 PER의 10배가 적정합니다. 그러나 2000년이후 중국 주식 발행값은 가장 낮을 경우가 PER의 20배 였고, 2009년이후에는 40배에 달하기도 했습니다(인중리 실장). 중국은 지난 7월 농업은행 상장으로 220억 달러를 조달했다고 자랑합니다. 해외자금도 있었고, 기관투자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국가가 시장에서 민간의 자금을 쓸어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증시는 민간자금이 국유기업으로 향하는 합법적인 통로입니다.

셋째 부동산시장.

저는 최근 발간된 책 '중국증시 콘서트'에서 중국 부동산시장에 '봉이 김선달'이 많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폭리구조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동산시장이야 말로 중국에서 '승자들이 벌이는 파티장'입니다. 약자들은 그 파티 장 옆 쓰레기 장을 뒤져야 하는 신세지요.

중국에 주택거래제도가 도입된 게 1998년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국가나 기업이 주택을 제공했지요. 주택거래를 허용하니 부동산시장이 형성됐고, 또 건설붐이 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富)는 다시 국가와 기업에게 쏠리게 됩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땅을 팔아 부를 챙깁니다. 특히 지방정부가 심했지요. 원래 국가 소유던 땅을 부동산개발 명목으로 기업에 판 겁니다. 전국 토지의 민간(주로 기업)양도 규모를 보면 1998년 68억 위안, 2000년 595억 위안, 2003년 5421억 위안, 1009년 1조5000억 위안 등으로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거의 매년 2배 늘었지요. 각급 정부 예산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정부가 땅 장사로 돈을 모은 겁니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 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를 삽니다. 주로 돈을 꾸지요. 일단 땅을 사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그 땅은 개발용지로 변하면서 시장가치가 크게 뜁니다. 물론 정부가 '개발용지 전용'을 도와주지요. 기업은 그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땅 살 때 빌린 돈을 값습니다. 그래도 돈이 남습니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건설하지요. 아파트를 3분1정도 지으면 분양에 들어갑니다.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아파트 값이 오르면서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해 아파트를 사게 되지요.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아파트를 사는 겁니다. 주민은 아파트 한 채 산 죄로 평생 '아파트 노예(房奴)'로 살아가야 할 처지입니다.

물론 집값이 오르면 얘기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그 분야는 또 다른 투기의 영역입니다. 달리 볼 문제지요. 어쨌든 이런 구조를 통해 부동산시장의 개인 자금은 폭리구조를 통해 기업에 들어가고, 다시 정부로 몰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민간은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고있는 광란의 투기 파티에 마음을 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경제가 성장할 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겁니다.

오늘 여기까지 입니다. 한 호흡입니다만, 너무 길었네요. 더 깊이 보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곧 설립될 '중국팀장 클럽'에서 관련 토론을 이어가도록 하지요.

다음 칼럼에서는 부정부패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디
Woody Han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
많은 분들이 '중국팀장 클럽'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계십니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꾸려질 이 모임은 '각 분야 중국관련 실무 담당자'로 구성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세미나, 제가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공부', 중국식으로는 '集體學習'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있으시거나,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jci@joongang.co.kr로 의견 보내주십시요. 곧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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