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 두 천재… 영감이 통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비교 전기(parallel biography). 인물은 저마다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어디까지를 등가로 놓고 비교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비교 전기'란 색다른 시도는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하물며 20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1879∼1955)과 피카소(1881∼1973)의 창조성 원천을 분석했다니 누군들 혹하지 않을까.

저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그동안 과학의 창의성과 예술·과학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저술활동을 벌여왔다. 피카소의 기념비적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기는 물론 연원도 비슷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출발은 궁핍했던 그들의 젊은 시절. 18세에 파리에 진출한 피카소는 리오 스타인·거트루드 스타인 남매 등 미술작품 수집가들에게서 새로운 미학이론을 흡수했다. 카페 등에서 과학·철학을 논하는 '피카소 패거리'도 형성되는데, 피카소는 패거리의 일원에게서 당시 최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천문학·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앙리 푸앵카레가 『과학과 가설』에서 다룬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4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의 독일어 번역판을 읽은 아인슈타인은 피카소가 새로운 미술언어인 기하학을 찾아냈듯이, 푸앵카레의 시간과 동시성에 대한 통찰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구상과 원근법을 뛰어넘었고,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 이래 물리학의 대전제였던 시간·공간의 절대성을 전복했다.

아인슈타인에게도 그를 둘러싼 연구 그룹이 있었다. '올림피아 아카데미'라 불린 이곳에서는 기하학·4차원 등 피카소 패거리와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이처럼 이들 업적에는 20세기 초반의 지적 환경도 한몫 했다. 새로운 발상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넘쳐 흐르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보헤미안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그 많은 젊은이들 중에서 유독 피카소와 아인슈타인만이 19세기를 뛰어넘는 획을 그을 수 있었을까. 피카소에 앞서서는 공간의 모호성을 제시한 세잔이 있었고, 아인슈타인에게는 전자기 현상에 대한 이론을 정리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로렌츠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뿌리를 19세기에 두었고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보이는 것을 넘어선 '실재'를 찾았기에 업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

저자는 제도권 교육에 거부감을 느꼈던 아인슈타인과, 5세 때 신동 기질을 보여 화가 아버지를 좌절케 했던 피카소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예술적 상상력을 지닌 인물로 사랑에 대한 열정도 닮은꼴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번주는 유독 피카소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손녀 마리나 피카소가 쓴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효형출판)에는 창작을 위해 가족마저 희생시켰던 피카소의 냉혹한 모습을, 피카소가 말년을 보낸 남프랑스 발로리스의 이발사와 피카소의 우정을 그린 『피카소의 이발사』(시공사)는 피카소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