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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스데이’ 공포 확산, 1인당 5만 달러에도 65% 분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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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10면

벙커 내부의 대형 홀 조감도. 간이 침대와 가구 등 장기간의 대피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이 배치된다.

“북한의 핵 공격에도 문제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지구 최후의 날(둠스데이)’을 대비한 민간용 지하 벙커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미국에선 북한의 핵 위협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 지하 벙커는 로스앤젤레스(LA) 북동쪽 바스토우 인근 모하비 사막에 자리 잡고 있다. 수용 인원은 132명. 1인당 입주비는 성인 5만 달러, 미성년자는 2만5000달러. 분양률은 65% 정도다. 이 공사를 추진 중인 비보스 그룹의 로버트 비치노 회장은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북핵 변수 등 불안한 국제 정세를 감안해 건설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핵전쟁의 공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이란 지적이 나온다.

핵 공격 대비한 LA 인근 모하비 사막 지하벙커 공사현장 르포

21일 LA에서 북동쪽으로 300㎞ 떨어진 바스토우 지역 모하비 사막 인근의 한 주유소. 아무런 건물도 없이 황량한 사막만 덩그렇다. 차량에 설치된 온도계가 화씨 111도(섭씨 43도)를 가리킨다. 사막 찜통 더위는 선뜻 차 밖으로 나설 수 없게 한다. 약속 시간인 오후 3시 정각,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흰색 SUV 차량이 다가왔다. ‘Vivos’라고 쓰여진 붉은 색 로고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내렸다가 사막의 뜨거운 바람만 마셨다. 숨이 막혔다. SUV 차량에 타고 있던 비보스 그룹의 바비 그로스먼 홍보 매니저는 “벙커가 근처에 있다.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100m쯤 달리자 펜스가 둘러진 간이 화장실 크기의 단층 건물이 나타난다. ‘설마 이게 벙커야?’ 실망이 앞섰다. ‘비보스’의 뜻을 묻자 그로스먼은 “생존(To Live)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러곤 “더위를 먹지 않게 빨리 벙커로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1> 모하비 사막 위에 노출된 벙커 외부의 모습. <2> 벙커 입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3> 벙커 안 설비들에 부착된 대형 스프링. 곽재민 기자

철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지만 아무 것도 없다. 지하로 길게 뻗은 가파른 계단만 있을 뿐이다. 조심스레 지하 벙커로 내려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엇갈려 있는 계단을 서너 차례 돌아 내려가자 지하 40m 깊이에 있는 벙커 입구에 다다랐다.

그러나 벙커 내부 진입은 쉽지 않다. 푸른 색의 대형 철문이 벙커 입구에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다. 무게만 해도 1.4t, 웬만한 무기로도 부술 수 없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철문은 바깥 세상과의 완벽한 차단을 위한 방어막이다.

벙커 내부가 궁금해졌다. 철문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어른 한 뼘 두께가 넘는 문이 서서히 열린다. 묵직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널따란 벙커 내부가 모습을 나타냈다. 지하 벙커 내부의 선선함이 느껴진다. 외부 온도보다 훨씬 낮은 섭씨 25도 안팎이라고 한다. 직원을 따라 입구 왼편으로 설치된 샤워장으로 직행했다. 비보스의 직원은 “벙커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샤워”라며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눈에 안 보이는 외부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샤워실 옆으로는 벙커 내부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는 대형 공기 정화 시스템과 하수처리 시설이 들어서 있다. 모든 설비 아래쪽에 부착된 대형 스프링들이 관심을 끈다. 안내원은 “벙커 내 모든 시설에 스프링이 설치돼 지진이나 폭발에 의한 파손을 막을 수 있다”며 “벙커 바닥 전체에도 수천 개의 스프링이 설치돼 외부 충격을 흡수한다”고 설명했다. 지하 2층, 1300㎡ 넓이의 이 벙커에서 1인당 생활 공간은 9.3㎡ 정도. 자가발전 시스템과 물탱크, 공기 정화 시스템은 생존 필수 시설이다.
벙커 한가운데에는 대형 홀이 자리하고 있다.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 한 편에는 방사능 감지 장치가 설치돼 있다. 핵 폭발에 의한 방사능 유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비보스 그룹의 로버트 비치노 회장은 “2년 전 이 사업을 처음 실행에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국제 정세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최근 뉴스를 통해 북핵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벙커 건설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벙커 분양 신청자 중에는 (김씨와 이씨 등) 한국 사람도 있는데 이는 자연 재해보다 북핵 걱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지하 벙커에는 취재차 온 독일·호주 언론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기자에게 “북핵 위협은 세계의 문제”라며 질문 공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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