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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16) 카타르항공 한국지사장 핀란드인 얘래 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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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얘래 탈라 지사장이 직접 만든 김치말이 국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치호 기자]

“겉보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맛만큼은 일품입니다. 살얼음이 동동 뜨는 새콤하고 깔끔한 맛의 김치말이 국수야말로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의 식탁에 빠질 수 없는 별미죠.”

카타르항공 얘래 탈라 한국지사장(41)은 한국의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 맛에 반한 핀란드인이다. 항공업계에 종사하면서 중국·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만 16년 넘게 근무한 그는 “다양한 요리를 먹어봤지만 여름철 김치말이 국수만큼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음식은 없다”며 “쫄깃한 면발에 적당히 삭은 김치 국물을 부어서 먹으면 더위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게 된다 ”고 말했다

담백한 맛의 음식을 좋아하는 탈라 지사장이 김치말이 국수를 처음 맛본 것은 2008년 가을. 당시 한국지사에 처음 부임한 그는 점심 때마다 동료 직원들과 함께 서울 삼청동·경복궁 일대 유명 맛집을 찾아 다녔는데 그 중 하나가 이름도 잘 모르는 좁은 골목길에 있는 김치말이 국수집이었다. 탈라 지사장은 “진정한 맛집은 좋은 분위기보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라며 “업무상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지만 평소에는 이 국수집처럼 천장이 낮고 허름한 음식점을 주로 찾는다”고 밝혔다.

“김치말이 국수 만들기에 도전한 이유는 그때 제 입맛을 바꿔놓은 그 맛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소박한 맛만큼 간단할 것 같지만 한 수 배우는 자세로 진지하게 임하겠습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탈라 지사장은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갔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의 박광수 주방장이 미리 준비해 둔 쇠고기 육수를 건네주자 탈라 지사장은 서툰 솜씨로 식초·설탕·겨자 등으로 간을 맞춘 뒤 열무김치 국물을 넣어 섞었다. 탈라 지사장은 “주로 배추김치 국물로 맛을 내던데 이번엔 왜 열무김치 국물을 넣느냐” 고 물어보자 박 주방장은 “열무김치가 배추김치보다 맛이 더 시원하고 깔끔하다”며 “개인 기호에 따라 넣는 재료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탈라 지사장은 이어 고명으로 쓸 열무김치에다 참기름·설탕·깨를 함께 넣어 조몰락조몰락 무쳤다. 배·오이도 껍질을 벗겨 채로 썰어 반으로 자른 삶은 달걀과 함께 넣었다. 이제 적당히 끓은 물에 풀어놓은 국수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국수가 익어가는 동안 탈라 지사장은 한식 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드라마·가요 등 해외에서 인기 있는 한국 문화 콘텐트를 이용해 한식을 홍보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항공사인 카타르항공이 아직 다른 글로벌 항공사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 믿습니다. 이처럼 한식도 아직 중국·일본 음식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곧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게 분명합니다.”

그는 “주한 외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 한 명 한 명이 자국으로 돌아간 뒤엔 한식을 홍보대사이자 평가자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그들이 서울 시내에서 아무리 작은 한식당을 찾아가도 영어로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영문 메뉴를 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주방장이 삶은 국수를 얼음물로 식히고 물기를 뺀 뒤 찬 열무김치 국물을 붓고 각종 고명을 얹었다. 탈라 지사장은 박 주방장의 시식 권유를 기다렸다는 듯 국수를 먹고 시원한 국물을 들이켰다.

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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