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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만연한 저질 욕설, 어디 군대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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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방부가 욕설 등 군대 내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육군 내 자살사건 중에서 언어폭력이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한 경우가 27%나 된다니 충분히 수긍할 만한 조치다. 문제는 욕설로 대표되는 언어폭력 풍조가 과연 군대만의 일인가 하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 자라나는 청소년, 심지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인강(인터넷 강의) 강사들조차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현실을 더욱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 욕설 섞인 PC방 간판들이 거리 곳곳에 버젓이 나붙은 것을 보면 사회 전체가 욕설 불감증(不感症)에라도 걸린 듯하다. 그 많은 정부 관련 기관과 국어운동단체, 각종 심의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일선 교사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욕설·비속어(卑俗語)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92%나 됐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욕설 ‘실력’을 겨루는 ‘욕 배틀(battle)’이 유행하는가 하면 휴대전화로 ‘욕 어플(application)’을 내려 받는 풍조도 생겼다. 자극적인 욕설을 일삼는 인터넷 방송이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자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욕설에 쉽게 물들 수 있는 환경이다. 자극은 더 센 자극을 부르기 마련이다. 욕설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청소년, 나아가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삭막하고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욕설문화도 크게 보면 우리 문화의 일부다. 비슷한 또래 나이나 특정 집단에서의 동질감·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순기능도 있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해학과 유머, 비판정신도 반영되기 때문에 국어의 한 자산(資産)으로 여겨져 문학작품에 녹아들고, ‘비속어 사전’ ‘상소리 사전’들도 나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욕설 풍조는 남을 모욕하고 헐뜯는 ‘언어 폭력’에 불과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에서나 통할 법한 저질 말본새가 사회 전체로 번져서야 되겠는가. 자라나는 청소년들부터 학교와 가정에서 미리미리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 한국교총 조사에서도 학생들의 욕설이 늘어난 원인으로 ‘인터넷·영화·방송매체 등의 부정적 영향’(88%)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매스미디어와 교육계 종사자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6월 한 달간 지상파 3사의 인기 예능 체험프로그램을 11회분만 조사했는데도 욕설·비속어·차별·인격모독적 표현이 무려 844건이나 적발됐다. 방송들이 ‘고기를 구워 처먹고’ ‘심심해 뒈지라고’ 같은 막말을 마구 쏟아내면서 청소년들에게 바른 말 고운 말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TV·라디오 방송이나 인터넷 강의 등 공적·교육적인 소통공간에서만큼은 언어폭력이 단 한마디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관련 기관들이 강력한 대책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고 더럽히는 언어 환경을 바로잡는 것은 군대만의 과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