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검찰 '병풍 갈등'점입가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병풍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지검에선 검찰의 내부 갈등 기류가 그대로 표출됐다. 지난 22일 김진환 서울지검장 주재로 열렸던 병무비리특별수사팀 회의 때 '수사 종결'과 '계속 수사' 입장이 맞섰던 것에 이은 2라운드였다.

정현태(鄭現太)3차장 검사는 이날 오후 9시쯤 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1997년 7월을 전후해 만난 정·관계 인사들의 명단을 조목조목 알려줬다.

97년 7월은 병무청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적 기록표를 공개한 시점이다. 25일 수사 결과 발표 때 공개할 예정이던 내용을 미리 알려준 것은 일부 언론이 가판에서 "金전청장이 97년 7월 권영해 안기부장과 김광일 청와대 정치담당 특보 등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한 게 계기가 됐다.

서울지검 수뇌부는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튈 것을 우려해 이에 적극 대응키로 결정했다. 鄭차장이 "金전청장은 그해 6∼7월 외국에 나갈 때 權씨에게 인사하러 찾아갔고, 金특보에게는 8월께 병적기록표가 왜 말썽이 났는지 보고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金전청장이 당시 H호텔에서 여춘욱 병무청 징모국장과 함께 고흥길·황우여 의원을 만나고 이후 정형근·박세환 의원 등을 만난 사실 등도 함께 공개했다. 金전청장이 만난 사람 중에는 민주당 의원들도 있었다. 鄭차장은 "지금까지 조사 결과 병역 은폐 대책회의로 볼 수 있는 모임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소동은 오전에도 한차례 있었다. 鄭차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수사 주무부장인 박영관(朴榮琯)특수1부장이 전날 한 발언을 뒤집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 22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검찰에 전격 소환된 金전청장의 비서실장 朴모씨의 진술이 발단이 됐다.

朴부장이 23일 저녁 기자들의 질문에 "97년 7월께 金전청장이 高·黃의원을 H호텔에서 만났고 병무청으로 찾아온 鄭의원도 만났다"는 朴씨 진술을 공개했던 것.

곧바로 검찰 일각에선 朴씨의 진술이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음을 증명해줄 새로운 것이라며 25일로 예정된 수사 결과 발표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鄭차장은 金전청장과 비서 朴씨의 진술은 물론이고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내용을 공개했다.

특수1부를 지휘하는 차장검사와 그 아래 부장검사의 말이 서로 다른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짐으로써 검찰 내부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鄭차장은 "더 이상 수사할 것이 없다. 수사 결과는 예정대로 25일 발표하되 시간을 앞당겨 오전 11시에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못박았다.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 co. 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