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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25. 필동 총격 사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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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군납 사업을 하던 1968년 필리핀에서 열린 서태평양지역 건설업자 대회에 참석해 마닐라 시장과 악수하고 있는 필자(左).

강 사장의 수술실 앞에서 나는 1대 3으로, 수적인 열세 속에 격투를 벌였다. 격투라고 하지만 사실은 싱거운 게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몸놀림이 아주 날렵했다. 동북고에서 축구선수로 단련된 데다 박치기에 자신이 있었다. 넥타이를 잡아당겼던 이를 머리로 들이받아 쓰러뜨린 다음 곧장 옆차기로 나머지 둘도 순식간에 제압했다. 그들이 강 사장을 살해하러 온 세력이라고 믿었던 나는 쓰러진 세 사람을 잇따라 걷어찼다. 그때 운전기사와 상무(최경환)가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들까지 가세해 그들을 곤죽이 되도록 때렸다.

상황이 끝나고 수술실 앞 벤치에 앉아 있으니 한 중년 남자가 툭툭 쳤다. "나, 중부서 수사계장이오." "아, 예." "당신이 기자를 때렸소?" "예? 걔들 기자 맞아요?" "그럼요, 조선일보 기자요."

세 사람은 서울 중부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와 취재차량을 운전하던 기사였다. 총격 사건을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언론사 기자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현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특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자라고는 대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기자라면 으레 카메라를 메고 다니고 경찰처럼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취재하는 줄 알았다. 더구나 점퍼 차림의, 그렇게 구질구질한 복장으로 다니는 줄은 몰랐다.

세 명이 '집단'으로 때렸으니 '특수 폭행죄'가 적용된다고 했다. 나는 사정을 했다. 사장이 수술하는데 지금 아무도 없다, 가족이 오는 대로 바로 경찰서에 출두하겠다며 울먹이면서 부탁했더니 그는 순순히 그러라며 돌아갔다.

다음날 중부서 서장실로 찾아간 나는 다시 한번 애원했다. 기자인 줄 모르고 때렸다, 어음 결제 등 회사 일을 마무리하게끔 하루만 시간을 달라, 운전기사와 상무는 먼저 출두시키겠다 등등…. 그러자 웬일인지 이번에도 그러라고 했다. 추측컨대 경찰도 슬슬 길 정도로 기자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라 은근히 고소해 하면서 나를 방어해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

월요일 아침 경찰서로 가며 신문을 사 보니 신문마다 '필동 심야의 총격 사건/ 청부살인인가' 등의 제목으로 우리 사건이 대서특필돼 있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자사 기자가 폭행 당한 까닭에 경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무색해진 강력범 단속/현장서 범인 놔 줘' '상해 2주의 폭력은 폭력이 아닌가/ 경찰, 영장 신청 기피'라는 제목 옆에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은 기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2주 진단이 나올 만큼 기자가 맞았는데 왜 나를 바로 연행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다른 신문들도 조선일보를 거들었다. 나중에는 서울시경 출입기자들까지 나섰다. 언론의 등살에 시달리던 시경 국장이 마침내 중부서를 방문해 기자들 앞에서 "네가 경찰서장이야?" 라며 중부서장의 모자를 벗겨 팽개쳐버렸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나는 출두하자마자 바로 구속됐다.

지하실에서 취조를 받는데 사진기자들이 들락날락했다. 내 얼굴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씨익' 웃었다. 그들이 원하는 사진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거나 괴로운 듯 이마에 손을 대고 있거나 험상궂게 인상을 쓰는 포즈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번번이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할 수 없다는 듯 투덜거리며 취조실을 나가버렸다. 당시 신문에 상무와 운전기사 얼굴만 실리고 내 얼굴이 빠진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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