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끝. 金心은 어디로:동교동 움직여도 金心과는 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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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선의 단골 이슈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특정후보 지원 시비다. 이른바 '아무개 심(心)'논란이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 임기말엔 '노심(盧心)', 김영삼(金泳三)대통령 말기엔 '김심(金心)'이 쟁점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시비는 재연되고 있다. 표현은 5년 전과 똑같은 '김심'이지만 이번엔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의 뜻'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후보는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불 때 "국민경선은 DJ가 감독한 쇼"라고 주장했다.'노무현(盧武鉉)후보는 DJ양자'라고도 몰아붙였다. 최근에는 "정몽준(鄭夢準)의원이 바로 DJ의 진짜 양자"라며 '국민통합21'을 'DJ신당'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 盧후보쪽도 부쩍 '김심'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盧후보측 관계자들은 정몽준 신당이 가시화하면서 "(후보단일화 논의 등에서)대통령 비서진과 측근은 손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부에선 "DJ를 직접 거론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대통령의 특정주자 지원 여부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우리 정치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원은 결정적 힘을 발휘한다. 대통령이 돕는 사람은 조직과 자금·정보면에서 경쟁주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당과 공직사회는 물론 정보기관·사정기관·국세청·은행·기업이 줄줄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지원 논란은 늘 불공정 시비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지원은 비밀리에 이뤄지곤 했다. 이같은 관행은 특정주자의 지지도나 세력·자금면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시비를 낳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일관되게 "김심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러가지 근거도 제시한다.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은 "대통령이 특정인을 밀었다는 게 알려지면 양쪽 다 치명상을 입는다"고 주장한다.

비밀지원 가능성도 "비밀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면서 부인한다. 심지어는 "'김심'이 민다고 알려지면 손해난다. 그래서 지원을 바라는 주자도 없다"면서까지 '무심(無心)'을 내세운다. "언제는 노무현이라더니, 이제는 정몽준이냐"는 볼멘소리로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선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첫번째 요인으로 金대통령과 이회창 후보 사이의 악연을 꼽고 있다. '김심=반(反)이회창'이란 분석으로 연결되는 주장이다.

사실 金대통령 입장에선 李후보가 집권하면 '정치적 손해'가 막대하다. 우선 자신의 핵심과제였던 햇볕정책이 원점으로 되돌려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李후보는 이미 햇볕정책과는 배치되는 "북한이 변해야 지원한다"는 상호주의를 천명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여기에다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철저한 추적도 다짐하고 있다.

다음이 실정(失政) 또는 비리 추궁이다. 金대통령은 이미 세명의 아들 가운데 두명이 비리혐의로 수감되는 고통을 겪었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金대통령의 부인과 장남의 비리연루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현대그룹에 대한 특혜의혹도 파헤치겠다고 말하고 있다. 공적자금 집행과 회수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따지기 위한 국정조사가 민주당의 이견으로 여의치 않자 "어차피 현정권에선 진상파악이 어려우니 다음 정권에서 샅샅이 조사하겠다"며 무산시킨 한나라당이다.

야당시절부터 金대통령과 고락을 함께 해온 측근들도 한나라당의 표적이다. 비록 李후보가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청와대나 민주당 인사들은 많지 않다. 이같은 압박 때문에 金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터전이요, 노벨평화상 수상의 '1등 공신'격인 아태재단까지 포기해야 했다. 金대통령과 그의 핵심측근들이 李후보와 한나라당의 집권을 극도로 꺼릴 것이라는 추정은 무리가 아니다.

金대통령 재임 중에 있었던 정치적 사건들, 이른바 세풍(稅風)·병풍(兵風) 등도 같은 맥락이다. DJ정권은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으는 과정에 李후보가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이 때문에 양측의 감정은 극도로 상해 있다.

이 모든 정황을 바탕으로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김심'을 의심해왔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광주를 기점으로 '노풍'이 불자 "동교동과 연청(민주당 청년조직)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에 金대통령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거나 동조기미를 보이자 이번에는 "DJ가 정몽준 의원을 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盧후보측도 '정몽준 지원설'에는 한나라당과 비슷한 의견이다.

물론 정황이 이렇다고 해서 바로 '김심은 있다'는 주장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극구 "金대통령 입장에서 명예를 지키는 길은 중립뿐이다. 뭐하러 도박을 하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측근들이야 정권 재창출에 집착하지만 대통령은 초연하다"고 말하는 청와대 관계자도 있다. 일부는 "DJ가 대선 중립을 강조하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鄭의원 측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뛴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도 '김심'논란은 끝내 규명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역대 대선이 그랬다. 늘 심증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1, 2년 지나다 보면 이런 주장의 상당부분이 사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김심'논란과 관련해 주목되는 게 바로 민주당 동교동계의 거취다. 동교동계는 한국 정치사에서 명멸한 어떤 정파보다 강한 결속력을 보여왔다. 그 정점에는 늘 金대통령이 있었다. 그런 동교동계가 최근 잦은 모임을 갖고 있다.

동교동계 관계자들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에는 후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교준 기자

kj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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