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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기철 서울대명예교수]각시붕어·버들치와 한평생 '물고기 박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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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는 누구인가? 우리 민물고기 30종 이상을 알고 있는 유망한 사람인가, 열 종밖에 모르는 평범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열 종도 모르는 불행한 사람인가."

이 글은 22일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물고기 박사' 최기철(崔基哲)서울대 명예교수가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민물고기 백가지』 머릿말에 쓴 것이다.

우리나라 1세대 원로 어류학자였던 崔교수의 삶은 오직 민물고기와 함께 했기에 민물고기의 이름을 알고 모르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과 불행의 잣대로 여겨졌다.

"고인은 황망했던 우리나라 물고기 연구를 반석 위에 올려 놓으셨지요. 이제 민물고기 연구는 거의 완성된 상태나 다름 없습니다."

제자인 권오길(權伍吉·강원대 생명과학부)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애도했다.

"술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으셨고 채집을 나가서도 저녁 10시에 주무시고 아침 5시에 일어날 정도로 빈틈이 없으셨지요. 그런 철저함에 무엇이던 해내고야 마는 개척정신이 어우러졌기에 큰 업적을 남기신 겁니다. 게다가 제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끔찍했죠.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올초 저에게 친필 연하장을 보내셨어요. 그렇게 정성을 쏟으시니 어떻게 제자들이 감동하지 않겠어요."

대전에서 태어나 1931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崔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당시 조선박물학회에서 한 노학자가 남산 제비꽃을 신종으로 발표하는 것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오백년이 넘는 수도의 남산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물이 있었다는 점은 개척적인 일에 목마르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48년 서울대 사대에 자리를 잡은 그는 생태학 중에서도 간석지 연구에 주력했다. 이 연구가 틀을 잡았을 무렵인 63년부터는 태백산맥의 존재를 동물지리학상으로 밝혀내겠다고 작정하고 설악산에서 민물고기의 서식 종류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진정한 민물고기 연구는 정년 퇴임 후인 80년대에 본격적인 닻을 올리게 된다. 그는 칠순이 넘어서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9년 동안 남한지역의 모든 계곡을 헤매고 다녔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한국의 자연-담수어편』(전 8권)의 저술로 나타났다.

이 책은 생태 환경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연구는 운동으로 이어져 94년엔 '생태계 지킴이'들이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를 만들었다. 고인은 최근까지 생물학자의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이 만든 '곤민모임'을 후원하며 어린 제자들을 길러내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감사인 홍영표(洪榮杓·국립중앙과학관 연구관)씨는 "고인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민물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성과를 알려주려고 하셨다. 고인과 답사를 나갔을 때는 열살 어린이들과 어울려 고기를 좇으셨다"고 회고했다.

평생 물고기와 함께 한 씩씩하고 자상한 '물고기 할아버지'의 귀천(歸天)은 버들치나 각시붕어떼들이 우리 곁을 점차 떠나는 현실과 자꾸 오버랩돼 아쉬움을 더한다.

유족은 장남 최남석(崔湳錫)씨 등 3남4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9시. 02-3410-6918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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