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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박근혜 누구와 손잡을까-鄭·盧와 선 그으며 李엔 묵묵부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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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성의 헤어스타일은 유행을 탄다. 때론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 모양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국미래연합 대표인 박근혜(朴槿惠)의원은 한 가지 스타일을 20년 넘게 지키고 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陸英修)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이어받은 '한복용 올림머리'다. 스스로는 "가장 잘 어울려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주변에선 "의지가 강하고 고집스러운 단면"이라고도 해석한다.

이런 朴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대선주자들의 구애가 한창이다. 朴의원을 잡으면 상당한 지지도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0일 실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朴의원은 23.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1위 이회창(李會昌) 후보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당시 25.7%를 기록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와는 박빙의 경쟁이었다. 이후 지지율 조사대상에선 빠졌으나 그는 자신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언행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여성계와 박정희(朴正熙)향수세대, 경제발전 추진세력을 자임하는 3공 출신의 지지와 영남 특히 TK(대구·경북)에서의 세 확대도 노릴 수 있다. 혼인으로 치면 지참금이 많은 배우자감이다. 최소한 朴의원을 영입하면 그가 경쟁후보를 지지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그래서 혼미를 더해가는 대선 레이스에서 朴의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정치인의 선택은 그가 처한 상황 외에 성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朴의원은 자신의 기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97년의 15대 대선을 앞두고도 후보들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손짓했다. 그는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리곤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대선 패배 후 동료의원 수십명이 당을 떠나 여당으로 갔지만 그는 남았다. 대신 98년 4월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 등원했다.

그런 그는 2000년 지방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를 돕지 않았다. 해당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을 숨지게 한 10·26의 주범 김재규(金載圭)전 중앙정보부장의 비서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당의 지원요청에도 그는 꿈쩍 안했다. 최근의 다자연대 논의과정에서 朴의원은 '국민통합21'의 강신옥(姜信玉)기획단장에게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姜단장이 金전부장의 변호사였다는 이유다.

그래서 朴의원을 움직이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명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朴의원과 연대할 가능성이 제일 컸던 파트너는 정몽준(鄭夢準)의원이었다. 朴의원도 호감을 보였다. 朴의원 주변에선 "세대교체를 이루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을 함께 풀어낼 적임자였다"고 鄭의원을 평한다. 朴의원은 지난 4월 미래연합 창당 전 鄭의원에게 동참을 권하기도 했다. 鄭의원이 답을 주지 않았지만 그는 "월드컵 준비에 바쁠 것"이라며 넘겼다.

8월 월드컵 이후엔 鄭의원이 朴의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둘은 만났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朴의원은 회동 후 "신당의 노선이나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복안도 없이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무렵 朴의원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盧후보의 제휴 희망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당을 같이 하느냐"고 잘랐다.

최근에는 민주당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의원 등으로 구성된 4자연대가 朴의원을 설득 중이다. '5자연대' 결성 노력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朴의원의 반응은 냉담하다. 그는 통합신당 논의를 '비빔밥' 또는 '얼룩송아지'라고 폄하했다.

이에 앞서 朴의원은 지난 2월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당시 이회창 총재의 당운영 방식을 '제왕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래서 朴의원의 선택은 오리무중이다. 스스로는 "한달 후에 지지할 후보가 있으면 밝히겠다"고 말해 놓은 상태다. 朴의원을 보좌하는 정윤회(鄭潤會)비서실장은 "朴대표의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최근 朴의원 영입에 가장 활발히 노력하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당직자들은 "朴의원이 탈당 전 요구했던 대선후보 경선, 집단 지도체제, 당권과 대권의 대선 전 분리, 상향식 공천이 이미 도입됐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朴의원의 정체성이 한나라당 쪽이라고 주장한다. 朴의원은 "최선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노선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반길 만한 얘기다.

특히 李후보는 10월 26일 국립묘지에서 열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키로 했다. 이를 위해 부산후원회 참석을 취소했다고 한다.

朴의원 입장에선 한나라당행은 TK 지역정서와 충돌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곳은 李후보가 강세다. 그래서인지 朴의원의 비서들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경우 한나라당에 복당할 것"이라고 했다. 朴의원은 결정을 내리면 움직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李후보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었느냐다. 朴의원 쪽에선 "최근 李후보가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팔을 벌린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간과한 오만"이라고 불쾌해 했다. 한 관계자는 "李후보가 확실한 메시지를 갖고 직접 나서야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朴의원이 미래연합을 유지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의 주변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쪽이 다수다. 朴의원은 재정난으로 월세 3천5백만원인 미래연합 당사가 보증금(2억5천만원)을 거의 까먹게 되자 새 사무실 전세비용 4억5천만원을 자신의 집을 저당잡혀 마련했다고 한다. 朴의원 자신도 "고민하지 않는다. 채워야 할 게 없는데 무얼 걱정하느냐"며 느긋한 자세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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