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없이는 생성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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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몇년 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갔을 때, 지구상에는 30여종의 서로 다른 인종이 존재했었지만 다른 종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현생 인류'라는 단 하나의 종만이 살고 있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인류뿐 아니라 다른 생물종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수백만종의 생물이 이 순간 지구상에 존재하지만 이보다 수십 내지 수백배에 달하는 생명종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현재 있는 종보다는 언젠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종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어떤 좋았던 것이 사라졌을 때 '무상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무상(無常)'은 원래 '항상성을 가지지 않음' 즉 '영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개의 생명체만 무상한 것이 아니라 생명종도 역시 무상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생명체만 무상한가. 사실은 물질세계도 무상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세계 이해다.

우주적 규모에서는 성간물질이 모여 별을 형성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빛을 발하다가 다시 흩어진다. 한 예로, 우리가 보기에는 태양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도 50억년 후면 사라진다는 정해진 생명이 있다. 이렇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는 것은 미시적 규모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원자 내부에서는 무수한 미립자들이 순간에 생성됐다가 순간에 소멸한다. 그들의 생명은 1조 곱하기 천억분의 1초다. 그들의 생명을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1초로 늘린다면 우리의 1초는 지구 역사의 60만배인 약 3000조년이 된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물건들도 사실은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의 나타남과 하나의 사라짐이 결코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개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립자든 생명체든 천체든 상관 없이 하나의 소멸은 다른 것의 생성과 깊이 연관돼 있다. 낙엽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그것이 양분이 돼 다음 생명체가 생성되듯이, 생명체의 소멸은 단순한 하나의 없어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생명의 생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역으로 어느 한 생명체의 생성 기반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으로 마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은 순환의 고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지구 자원의 유한성과 지구라는 공간의 유한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연관의 고리는 극미의 세계인 원자 내부나 극대의 세계인 우주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한, 이전 존재자의 소멸 없이는 다음 존재자의 생성이 지속될 수 없다. 물론, 삶이 있음으로써 죽음이 있는 것이지만, 바로 그 죽음이 있음으로써 다음 삶의 기반이 마련된다. 따라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태어남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오직 인연의 거대한 그물망 안에서 진행되는 영원한 과정일 뿐이다. 이 두 가지의 경향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전체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여기서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존재 방식이 '영원한 삶의 진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역설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그래서 무상은 존재자의 있음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존재자의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이 '시'가 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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