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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맥아더 동상 꼭 없애자” 종북단체 한목소리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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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통일연대…. 최근 핵심 간부들이 공안 당국의 수사를 받았거나 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는 단체들이다.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05년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의 핵심 세력이란 점이다. 검찰과 경찰의 조사 결과 이들 단체 간부들이 주도한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의 배후에 북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맥아더 동상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공안 당국은 우선 철거운동이 전개됐던 2005년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2005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시작된 지 10년이며 광복 60주년이었다. 북한은 그해 1월 ‘구국전선’의 신년사를 통해 “‘미군 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고 주장했다. 같은 달 련방통추·실천연대 등 9개 단체는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출범한 것이 ‘주한미군철수공동대책위원회’였다. 대책위 산하에 ‘맥아더 동상 타도 특위’가 꾸려졌다. 이 시기를 전후해 단체 간부들이 북 공작원들로부터 ‘반미 투쟁’ 등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공안 당국은 보고 있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반미운동의 기폭제가 필요했던 종북단체나 친북 세력에 맥아더 동상 철거의 상징적 의미는 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선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거의 다 이긴 한국전쟁을 망친 장본인”이라며 “북한이 인천상륙작전을 얼마나 뼈아프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임순희 선임연구위원은 “맥아더 동상을 없앰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은 련방통추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련방통추가 2005년 5월 “제국주의 상징인 맥아더 동상을 타도해야 한다”며 철야 농성을 벌인 데 이어 같은 해 9월 11일 4000여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통일연대 상임대표로 철거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지난 6월 무단 방북한 한상렬(진보연대 상임고문) 목사다. 철거운동 당시 북한은 민주조선·노동신문 등을 통해 “맥아더 동상은 폭파돼야 한다”며 수차례 옹호 성명을 냈다.

이에 대해 윤기하 련방통추 상임의장은 “정상적으로 열어 온 집회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누명을 씌워 수사하는 것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연대도 집회 등을 통해 “통일부 허가를 받고 북측 인사와 접촉한 사안을 검찰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무리하게 수사하고 있다.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했다.

이철재·최선욱 기자

◆맥아더 동상=인천상륙작전 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1957년 9월 송학동 자유공원에 세운 높이 5m의 청동 주조물.


맥아더 동상 철거 선동 일지

■ 2005년 1월 1일=북한 ‘구국전선’ 신년사 “‘미군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

■ 1월 28일=련방통추 등 9개 단체 연석회의

■ 5월 10일=‘미군철수공동대책위원회’ 결성, 산하에 ‘맥아더 동상 타도 특위’ 구성. “제국주의 상징인 맥아더 동상을 타도해야 한다”며 철거운동 시작

■ 6월 16일=북한 ‘민주조선’,“‘전쟁 광신자’ 맥아더의 동상은 철거돼야 한다”

■ 9월 11일=통일연대·한총련 등 4000여 명, ‘맥아더 동상 철거요구’ 폭력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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