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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대표 박혜숙] 역사 대중화 5년째 출판업계의 '鐵女'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출범한 지 불과 5년이 지난 출판사 '푸른역사'는 '역사 대중화'를 내세워 전문성과 대중성이 조화된 책들을 꾸준히 내오고 있다. 최근 일제의 음모를 파헤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를 펴낸 박혜숙(41)대표를 만나 역사서에 매달리는 이유 등을 들어봤다.

박대표의 별명은 '철녀'(鐵女)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이를 지키려는 자세를 보고 출판계 안팎의 지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어떤 이는 "얼굴에 고집이라고 쓰여 있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부리부리한 눈에 선이 분명한 얼굴이 우선 그런 인상을 주지만, 타협할 줄 모르는 자세 또한 그런 별칭을 얻은 이유 중 하나다.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란 책을 펴낼 때 일이다. 당초 원고는 명가의 풍수와 후손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풍수 관련 책 성격이 짙었다. 30∼40대 남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내용이었지만 역사서 전문이란 출판 이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손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저자와의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명가의 가훈을 소개해 기득권층에 요구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부각하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이 책은 결국 수만부가 팔려 출판사의 '효자'가 됐는데 그는 "출간을 포기하더라도 역사성이란 원칙을 지키겠다는 자세로 마음을 비웠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만 기억한다.

역사에 대한 이같은 애착엔 사학도 출신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일제시대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1년간 전문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세상사에 호기심도 많았고 스스로 학자적 자질이 없다고 생각해 1997년 출판계에 뛰어들었다. 6년간의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80년대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선 개인이 실종됐죠. 저 개인적으로는 정신적 공황이랄까, 마땅히 읽을 책도 없고 자기성찰에 필요한 준거틀이 필요했는데 이를 역사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역사 관련 책들을 출판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여기서도 그는 특유의 뚝심을 발휘했다. 기존 출판사를 찾아가 역사전문 출판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해 자회사 형식으로 문을 열었다. 망하면 공동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지분 참여도 했다. 이후 2000년 완전 독립할 때까지 『새로 쓰는 백제사』(이도학 지음)를 필두로 24종의 역사서적을 거의 혼자 힘으로 기획, 제작해 냈다.

여기엔 준비기간 중 사학계의 지적(知的)계보도를 작성한 것과 그의 바지런함이 큰 도움이 됐다. 요즘도 어지간한 역사 관련 학술회의는 빼놓지 않고 참석하지만 당시엔 세미나 뒤풀이까지 개근을 하다시피 했다. 술자리에서 학자들간에 오가는 대화에서 기획거리나 필자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였단다.

"분기별로 한 권 정도만 '효자'가 나오면 내고 싶은 책, 우리 사회가 필요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그는 뚝심이 대단한 여장부다. 5백부도 채 소화되지 않는 학술 계간지를 몇 년째 도맡아 출간하고,역사 학술회의를 겁없이 후원하기도 하니 말이다. "전문 출판사로서 학계의 성과와 고민을 독자와 함께 나누도록 하는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야사나 백제사 같은 대중성이 떨어지는 통사(通史)류 출판도 망설이지 않는다. 여기에 대중적 글쓰기가 가능한 연구자라면 과감히 데뷔시키니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사랑방 모임'이란, 제법 격식을 갖춘 정기 연구모임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출판사를 하면서 남에게 손벌리지 않을 정도만 되면 됩니다.돈 된다고 다른 데 기웃거릴 생각도 없고 끝까지 '일하는 편집자'로 남고 싶다"는 그가 듬직해 보였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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