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와 한국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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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대통령 특사와의 회담에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음을 북한 대표가 시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다. 요사이 한반도에 불었던 훈풍을 단숨에 삭풍으로 바꿀 수도 있는 폭발력을 지닌 이 사안의 보다 정확한 전말과 의미는 좀더 시간이 흘러야만 비로소 분명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여곡절로 가득 찬 한국 현대사에서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가 요구된다.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의 방한 시도가 다시 좌절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독일에서 조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반체제인사'가 됐고, 그 후 학술적 이유에서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대학에서 강의하는 등의 이력 때문에 공안 당국에 의해 '친북 인사'로 낙인 찍힌 宋교수는 지난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술대회 발표자로 입국하려다 포기했다. 당국이 요구한 준법서약서가 다시 문제가 된 것이다.

宋교수를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해 宋교수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우리 법원은 '그 주장을 진실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이미 내린 바 있다.

과연 宋교수의 어떤 활동 때문에 공안 당국이 그를 그처럼 타기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결됐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기만 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황이 여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宋교수도 한국 사회의 미성숙함에 대해 '민주화는 끝없는 자기 계몽의 과정'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다양한 업적을 쌓은 宋교수를 학자로서 입신하게 한 것은 이른바 '내재적 방법론'의 성과 때문이었다. 즉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사회주의 내부의 이념과 현실에 비추어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냉전적 편향을 시정하게 하는 혁신적 발상으로 구미 학계에서 주목받았고,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전향적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나는 개인적으로 宋교수의 주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회를 북한 내재적 이념과 현실에 의해 평가한다고 했을 때,그 이념에 본질적 문제는 없는가? 주체사회주의의 이념은 과연 북한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바람을 열린 방식으로 담고 있는가?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에는 왜 宋교수가 그토록 강조하는 비판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가? 바꿔 말하면, 왜 그 이론에서는 어두운 북한의 현실과 북한 민중들의 억눌린 삶에 대한 냉철한 학문적 진술이 찾기 어려운가? 宋교수의 저술에서 묘사된 북한의 현실은 과연 객관적 사태를 충실히 반영하는가?

宋교수의 귀국을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이런 엄정한 학술적 비판과 토론의 여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럼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선입견을 떠나 宋교수의 생각이 우리 사회 공론 영역에서 직접 치열하게 논의되고 분석될 때에만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시금석 가운데 하나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다. 나는 북한을 다루는 내재적 방법론의 학문적 균형성과 현실 적합성에 대해 적지 않은 회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 때문에 누가 학자인 宋교수를 금기시한다면, 그런 태도 자체가 열린 사회의 이상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宋교수는 자신의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귀화한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원래의 조국 한국에서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당국은 그의 귀국을 무조건적으로 허용해야 마땅하다. 이 사안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재는 의미심장한 잣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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