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영화2제>록가수의 고통과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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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쿠바 할아버지 음악가의 열정을 다룬 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매료됐다면 이런 의문을 한번 품어봤을 만하다. 한국에는 유사한 영화가 없을까. 그에 대한 대답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다큐멘터리 한대수'(감독 이천우·장지욱)는 이같은 갈증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영화에서 한대수(54)는 자신을 '할아버지 작곡가'라고 부른다. '한국 모던 록의 창시자''한국 최초의 히피''한국 포크 록의 대가'라는 별명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작품은 한대수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한대수란 뛰어난 예술가의 내면과 일상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물 좀 주소''바람과 나''행복의 나라로' 등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노출되는 그의 고단한 인생과 풍성한 정신에 푹 빠져들게 된다. 그가 발표한 음반 순서대로 얘기를 꾸려가되 흑백(과거)과 컬러(현재)화면을 요령 있게 교차하고, 중간 중간 만화식 화면 분할 등을 도입한 영상도 재치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가, 저항하는 가수로 흔히 알려졌던 한대수의 진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의미가 크다.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6㎜ 소형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영화다. 아직 필름영화에 비해 색감은 불안정하나 지난 40년 한국사의 그늘에서 부대껴왔던 한대수의 삶을 담아내는 데는 무리가 없다.

디지털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려면 보통 키네코(필름용으로 전환) 과정을 거치지만 이번엔 디지털 영사기로 직접 상영한다는 게 특징이다.

또 다른 디지털 영화 '뽀삐'도 동시에 개봉한다. 기동성이 풍부한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우∼리집 강아지 뽀삐"라는 한 화장지 광고가 연상되듯 '뽀삐'는 애완견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를 묶었다. 그럼에도 나열식 영화로 비치지 않는 건 젊은 여성 감독 김지현의 발랄한 재능 덕분이다. 10년 동안 기르던 강아지 뽀삐가 중병에 들자 애완견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 수현(백현진)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에 강아지를 기르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애완견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이모저모를 훑어본다. 개도 생각을 하는가, 개도 꿈을 꾸는가 등의 질문이 재치있다. 그래도 가장 귀여운 건 20여마리의 강아지다.

두 작품은 18일 대학로 하이퍼넥 나다(02-766-3390,교환 293)와 인사동 미로 스페이스(02-722-1814)에서 개봉한다. 두 편 모두 단독 개봉의 자격을 모자람 없이 갖췄지만 아직 우리의 영화 문화는 그만큼 무르익지 않은 모양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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