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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끝 >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 클러스터:'공단'시대 끝… 이젠 네트워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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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한국형 클러스터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자율적으로 조성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반면 공단 등과 같은 클러스터 뿌리가 이미 갖춰져 있어 중국처럼 정부가 나서서 씨를 뿌릴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민관 협력'등 제3의 형태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본지와 삼성경제연구소는 어제 공동으로 심포지엄과 좌담회를 열어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문화관광부의 클러스터 정책담당 국장과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한국형 클러스터의 발전 전략을 모색해봤다.

편집자

클러스터를 촉진시키는 '산업집적 활성화법'이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클러스터 육성·지원을 위한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한국형 클러스터의 발전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는 이날 중앙일보사 6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윤종언 상무=클러스터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이규황 부원장=클러스터의 요체는 구성원에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연구기관·소비자 등 다양하게 구성돼야 한다. 이런 주체들이 연결되고 주변시장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클러스터다. 과거 공단은 물리적인 공간만 제공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클러스터는 대기업·중소기업 등 공급자와 소비자, 물류·금융 등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분야, 연구기관·대학 등이 한 곳에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요즘 새로운 지식기반 산업이 등장하고 기업 조직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클러스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갑 국장=과거엔 불도저로 땅 밀고 공단을 만들어 공장을 입주시키는 방식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려 했다. 하지만 경제가 혁신주도형으로 바뀌면서 이런 방식으론 생산성을 높일 수 없게 됐다. 이제는 기업 뿐만 아니라 노동력·학교·연구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가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지식기반시대가 되면서 '집적'이 아주 중요해진 것이다.

▶구본탁 사장=대전에서 15개 기업을 모아 바이오벤처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바이오 산업은 어느 산업보다도 클러스터가 중요하다. 미국·말레이지아 등의 바이오 기업들이 클러스터 전략을 쓰고 있다. 다만 차이는 있다. 가령 미국은 MIT대학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클러스터가 형성됐지만, 싱가폴과 말레이지아는 정부가 주도해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한국과학기술대학 중심의 벤처 인큐베이터는 있지만 대학과 기업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지식을 공유하는 엄밀한 의미의 클러스터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 단계로 볼때 정부주도형인 싱가포르 모델이 돼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클러스터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국은 클러스터가 자발적으로 형성돼 정부는 시장의 불안전성을 제거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도 정부는 광역적인 혁신 체계가 이루어지도록 산업지도만 만들어 놓고 실제 주체는 지자체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지방이 다양화된다.

▶김병=클러스터의 요체는 하드웨어보다는 클러스터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테헤란밸리에 모여 있는 1천 7백여개 정보기술(IT)기업 가운데 40% 가량이 이전하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모여 있는 것만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반월·시화공단의 경우 클러스터 성격이 강하다. 대학과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업 등 클러스터에 필요한 구성요소를 거의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공단이 클러스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기업화 돼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자신의 상품없이 대기업이 주문하는 상품만 생산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이렇게 각 구성요소가 집적돼 있어도 이를 책임지고 끌고 나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게 문제인 것이다.

▶김종=원칙적으로 클러스터가 지자체 중심으로 촉진돼야 한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지자체는 아직 클러스터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다. 지자체는 모두 인기분야인 IT·BT만 하려하지 다른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도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정부는 지자체의 중복투자를 조정하는 데 그쳐야 한다. 또 인접한 교육·노동시장을 개방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야한다. 규제를 대폭 완화해서 외국기업들의 진출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윤=결국 클러스트의 대립개념이 공단인 것 같다. 클러스터는 기업 등을 일정 공간에 모아 넣는데 급급한 공단 개념을 넘어서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을 자유롭게 이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러스터의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가.

▶김병=제일 신경써야 하는 게 교육이다. 대학이 바뀌지 않고는 안된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1년은 교육 시켜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산학프로젝트가 거의 없다는 것도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종합적인 지역발전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지자체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해 지역별 차별화·특성화가 안된다. 또한 클러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인데 동종업계간 거래뿐아니라 이종업계간 거래도 거의 없다. 또한 우리나라는 물리적 단지 중심으로 돼 있어 거점 역할이 미약하며 정부부처가 중복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클러스터를 포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총괄 추진기구가 있어야 한다.

▶김병=거시적으로 보면 국제적 클러스터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적어도 한·중·일을 잇는 동북아 클러스터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김종=우리나라 클러스터 문제는 지역산업발전 문제와 연계된다. 지역간 균형발전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지속시키는 요체다.

진행=김영욱 전문기자

정리=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중앙일보·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참석자>

구본탁 인바이오넷 사장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사장

김종갑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이규황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현동훈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사회)

<가나다순>

◇클러스터(cluster)란=비슷한 업종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기업·기관들이 한 지역에 모여있는 것을 클러스터라고 한다. 대학·연구소(연구개발 기능)와 대기업·중소벤처기업(생산·아이디어), 벤처캐피털·컨설팅 등의 기관(각종 지원기능)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정보·지식 공유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산업집적(군집)지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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