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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천국’ 일본 이미지 먹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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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장수 국가’ 일본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고 있다. 만 100세가 넘는 노인들이 실제로는 수십 년 전에 죽었거나 등록된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고 행방이 묘연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서다. 지난해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이 79.59세, 여성이 86.44세로 집계됐다. 여성은 25년 연속 세계 최장수, 남성은 세계 5위 장수를 누리는 ‘고령자 천국’이다.

3일 도쿄 하치오지(八王子)시에 따르면 이곳에 사는 것으로 돼 있는 102세 할아버지의 경우 만 100세를 맞은 2007년 8월 시청 직원이 기념품을 갖고 방문했으나 며느리로부터 “2002년부터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하치오지시는 당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나 최근 고령자 관리에 허점이 많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또 이날 도쿄 아라카와(荒川)구도 108세, 103세의 할아버지가 주민등록(주민표)상으로는 가족과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으나 가족과도 연락이 두절된 채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2일에는 도쿄 주민 중 최고령자(만 113세)로 돼 있던 후루야(古谷) 후사 할머니가 실제로는 스기나미(杉竝)구의 거주 주소지에 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주지에 사는 딸은 “남동생과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확인 결과 남동생(71)도 등록 주소지에 살지 않고 있어 소재를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도쿄 아다치(足立)구에 사는 111세의 할아버지 가토 소겐(加藤宗現)이 실제로는 30여 년 전에 숨진 사실이 드러나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져 줬다. 가토 가족들은 사망 사실을 숨기고 그의 명의 은행 계좌로 연금을 챙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언론들은 “행정 당국이 미처 고령화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터질 것이 터진 것”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0세 이상의 고령자 실태 파악과 소재 확인은 주민등록을 토대로 지자체가 실시, 후생노동성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고령자 수가 급증함에 따라 호별 방문을 통한 확인은 사실상 힘들어진 상태다. 도쿄의 오타(大田)구는 지난해까지 100세 이상의 노인을 구청 직원이 직접 방문, 100세 기념 축하금을 전달하면서 소재를 확인했으나 올해부터는 고령자 증가로 인해 우편으로 전환했다. 또 77세, 88세, 100세 때 각각 축하금을 전달하며 소재 파악을 하고 있는 도쿄 스미다(墨田)구의 경우 본인이 없어도 가족에게 대신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독거 노인이 늘어나면서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은 채 노인시설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도 고령자의 소재 파악을 어렵게 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나가쓰마 아키라(長妻昭) 후생노동상은 3일 “일정 연령을 넘은 고령자의 안부를 전국적으로 일제히 확인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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