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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복날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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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마 역대 정부가 그저 묵묵부답, 가타부타 말 한마디 않고 뭉그적거리는 것 중 첫째가 저희들 문제일 겁니다. 식용개와 보신탕. 키우고 잡고 사고 팔고 먹는 사람 다 있는데, 법만 없습니다. 유령 동물이요 유령 음식인 셈입니다. 저도 지쳤습니다. 제발 무슨 결론이든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무자격자, 무법자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참에 한바탕 하소연이나 늘어놓으렵니다. 맘에 안 들어도 욕은 마십시오. 그저 가는 복날 개소리라고 생각하십시오.

보신탕. 이거 오래됐습니다. 전통과 역사가 만만찮습니다. 선사시대 때까지 거슬러가자는 분도 있지만, 참겠습니다. 식자라면 의당 고증과 문헌을 근거로 말해야 하는 법이니. 중국에선 주나라 때부터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례』에는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요리 중 하나로 개고기가 등장합니다. 『예기』도 보신탕을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쓰는 귀한 음식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황제가 먹던 음식, 바로 그겁니다. 항우를 물리친 유방은 개고기 매니어였습니다. 야인시절부터 부하 장수 번쾌의 개고기 요리에 푹 빠졌었는데 황제가 된 후에도 즐겼답니다.

복날 먹는 풍습도 유래가 있습니다. 사마천의『사기』에는 진(秦)나라 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에 개를 잡아 제사를 치렀다고 전합니다. 개고기는 불에 해당하고 복날은 쇠에 해당하니 불로서 쇠를 이기는(火克金) 의식인 셈입니다. 복날의 복(伏)자도 의미심장합니다. 사람(人)과 개(犬)를 합해 만들어졌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려면 누군가 상대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개가 사람을 먹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이 개를 먹게 된 것 아닐까요. 참 운명적이랄밖에요.

요즘 복날 개고기 소비가 줄고 있답니다. 대신 삼계탕은 매년 6% 이상씩 판매가 늘고 있답니다. 반겨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왠지 닭고기와 비교되는 건 자존심 상합니다. 개고기가 더 낫다, 나쁘다 이런 얘긴 않겠습니다. 『동의보감』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각종 효능, 말해봐야 입만 아픕니다. 대신 요즘 식으로 하겠습니다. 개고기는 무엇보다 친환경입니다. 유식한 말로 에코 프렌들리. 웬 친환경이냐고요. 식용 개는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공장입니다. 도사교잡종과 토종, 두 종자 합해서 약 124만 마리가 식용 개로 사육됩니다. 도사교잡종은 하루 평균 2.5kg, 토종은 1kg을 먹습니다. 먹이는 거의 100% 사람이 남긴 음식입니다. 한 해 약 126만t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셈입니다. 개박사로 불리는 안용근 충청대 교수는 “연간 1289억원가량을 절감한다”고 계산했습니다. 닭·오리 따위는 사료를 먹습니다. 친환경은커녕 분뇨를 퍼질러 환경을 해쳐놓기 일쑤죠. 그뿐입니까. 구황 단백질로도 최고입니다. 소·돼지가 걸핏하면 걸리는 구제역, 닭·오리에 있는 조류인플레인자, 개에겐 없습니다.

입 아프게 늘어놨지만 부질없는 자랑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개고기는 모든 게 무법(無法)입니다. 불법도 아니고 무법. 세상에 푸대접보다 나쁜 게 무대접이라는데, 이젠 제발 아무 대접이든 좀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개고기 안 먹는 세상을 만들든지, 아니면 먹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먹게 만들든지. 이런 어려운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고 개가 나설 수는 없잖습니까. 하소연은 하지만 기대는 않습니다. 아무 결론 없이 올해도 복날은 갈 겁니다. 또 그렇게.

뱀달이(사족):필자는 개고기를 싫어한다. 먹지도않고 먹어본 적도 없다. 심지어 개고기 먹은 사람과는 말도 하기 싫을정도이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