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군축시대 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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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2만∼5만명의 병력감축과 함께 군사분계선 일대에 배치된 병력의 군비(軍備)태세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7일 나오자 정부와 군 당국은 사실 여부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건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1백20만명에 이르는 북한 정규군의 규모에 비춰볼 때 이번에 제시된 감군(減軍)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의 실마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이 그동안 제기했던 군축 관련 주장 가운데 비교적 구체성을 띤 것은 1990년 9월 남북 고위급 회담 때 북측 단장인 연형묵(延亨默) 당시 총리가 제시한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방안'이다.

延총리는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풀기 위해 남북한이 외국 군대와의 합동훈련을 제한하고 비무장지대(DMZ) 내의 군사시설을 모두 철거해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특히 신뢰가 구축된 이후에는 3∼4년에 걸쳐 쌍방의 병력을 30만명→20만명으로 단계적으로 줄인 뒤 최종단계로 각 10만명 선으로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앞서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40주년을 맞은 88년 11월 노동당 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정무원(현 내각)의 연석회의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군축을 각 3단계에 걸쳐 시행하는 '포괄적 평화방안'을 제시했다.

주한미군의 경우 미군사령부와 지상군을 부산·진해(북위 35도30분) 이남으로 철수하고 이후 지상군을 완전 철수하며 이어 해·공군도 철수한다는 것. 또 남북한 병력은 1년 내 각 40만명으로 줄이고 2년 내에는 25만명으로 단계적으로 줄이고, 1년의 감축 과정을 더 가진 뒤 4년째부터는 10만명 이하만 유지하자는 방안이다.

군축과 미군 철수의 병행을 주장하던 북한은 최근 들어 선(先)주한미군 철수를 군비감축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4일 "조선반도의 군축문제는 남조선 강점 미군이 철수한 후 북과 남의 통일과정이 추진되는데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실권을 잡으면서 몇 차례 군축설이 나돌았지만 군병력을 건설현장에 투입하거나 집단으로 전역시켜 농촌지역에 집단거주토록 하는 등의 조치로 확인됐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군 당국자는 8일 "북한의 과거 군축제안은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제기돼 왔다"며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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