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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 세명 중 한명꼴 "숙식 해결하려 性매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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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초 가출한 李모(16)양은 지난달 서울 신촌의 한 공원에서 만난 金모(18)군과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 金군 또한 지난해 여름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이다. 한달 넘게 공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유흥업소 호객꾼으로 일하는 金군이 손님들에게 李양을 소개시켜줘 성관계를 갖게 하고 대가로 받은 돈을 나눠쓰면서 가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4년 전 계모와 싸운 뒤 가출한 韓모(16)양은 요즘 10여일째 서울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밤을 보낸다. 얼마 전까지 동성애 관계인 朴모(17)양과 지냈으나 朴양이 남자친구(19·식당배달원)의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해 혼자가 됐다.

이같은 가출 청소년들의 생활 실태가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의 조사로 확인됐다. 청소년보호위는 지난달 서울 동대문상가·대학로와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가출 청소년 2백11명을 대상으로 현장 인터뷰·설문조사 등 첫 심층조사를 벌였다.

청소년보호위 측은 "가출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각종 성 범죄에 노출돼 있었다"면서 "당초 예상보다 이들의 생활상이 너무 비참해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숙식 해결 위해 성매매=조사 결과 여성 가출 청소년 세명 중 한명꼴인 34%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매매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행·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들이 꼽은 상대방은 남자친구·선후배(37%)가 가장 많았고, 우연히 만난 사람(22%), 폰팅·채팅으로 만난 사람(17%) 등 순이었다.

실태 조사를 담당한 청소년보호위 이승형 경위(파견 경찰)는 "면담에 응한 가출 소녀들은 대부분 '며칠 함께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해주면 성관계를 갖는다'고 답했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하면 망설임 없이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특히 전체 가출 청소년의 15%는 동성애를 하고 있다고 답해 충격적이었다. 동성애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은 '가출생활 중 동거하는 친구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서'라고 답했다. 고된 가출생활에 따른 외로움이 동성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밖에 아버지 등 가족 구성원의 학대로 인한 '이성 혐오'(12%), '이성에 대한 자신감 결여'(12%), '유행'(8%)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공원에서 노숙=이번 조사에서 가출 청소년 중 34%가 '공원 화장실·벤치 등에서 노숙한다'고 답했다. 서울 지역에서 이들이 주로 노숙하거나 배회하는 곳으로는 동대문 대형 의류상가 일대(15%), 한강시민공원 여의지구(14%), 대방동 보라매공원(9%), 대학로 마로니에공원(8%), 신촌 창천어린이 공원(4%) 등이었다.

또 노숙 생활 등으로 인해 가출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피부질환·감기·성병 등 각종 질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 청소년의 절반 이상(57%)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청소년 보호시설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답해 청소년 보호시설 운영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李경위는 "대부분의 청소년 쉼터가 3개월 또는 6개월 과정의 단기 보호시설이고 교육 내용이 단편적"이라며 "미용·양재·봉제 등 교육프로그램이 한정돼 있어 가출 청소년들이 외면한다"고 분석했다.

박현영·이철재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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