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안전판 되기엔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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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내년에는 연기금들이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최근 정부가 이들의 주식투자를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내년도 주식시장에 연기금 자금 4조9천억원 가량을 투입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투입금액에 비해 크게 늘어난다 해도 절대 규모는 아직 작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내년도 투입분 4조9천억원에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을 연장한 것까지 포함돼 있어 순수하게 투입되는 금액은 이보다 훨씬 작다. 실제로 정부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도에 4조원을 주식투자에 배정했다. 그러나 이중 1조4천6백억원은 만기연장 분이다. 따라서 순수하게 국민연금이 내년에 주식투자에 쏟아부을 자금은 2조5천4백억원인 셈이다.

◇절대 규모가 작다=현재 주식투자를 하는 연기금은 국민연금과 사학연금·공무원연금 등 세곳. 이중 국민연금이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직접 주식에 투입한 돈은 2조4천억원 가량이다. 여기에 금융기관에 위탁 운용한 자금 1조2천억원과 수익증권 3천6백억원까지 합치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모두 3조9천억원을 주식시장에 투입했다. 이는 지난해 국민연금이 채권·주식·MMF 등 전체 금융상품에 투자한 자금 44조2천2백억원의 8.8%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연금은 38조6천억원을 채권시장에 투입했다. 이는 전체 금융자산 중 87.2%에 해당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에 주식투자를 위해 집행할 금액으로 제시한 금액은 주가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국민연금이 내년에 순수하게 집행할 자금 2조5천4백억원은 올해 외국인이 10월 4일 현재까지 매각한 자금 5조4천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외국인 매도 충격을 흡수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이다스에셋 조재민 사장은 "정부의 발표는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었다"며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전체 금융자산 중 30∼40%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초 정부는 내년도 집행분 중 일부를 올 4분기에 조기 집행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얼마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교체되면서 이런 계획이 흐지부지된 것으로 들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전문가도 "주가 급락 때 연기금이 투입돼 충격을 흡수하면서 싼 값에 주식을 거둬가야 한다"며 "만약 내년도에 주가가 오르고 난 뒤 매입하게 된다면 국민연금은 고가에 주식을 사들이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연기금이 자금시장 왜곡=국민연금 등 연기금들이 대부분 채권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쏟아부음에 따라 채권금리가 왜곡되고 있다. 채권시장의 양대 투자자인 국민연금과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은 전체 채권시장 규모의 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협과 국민연금이 채권 매입에 나서면 채권가격이 급등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연기금들은 주식에 60% 이상의 자금을 배분하고 있다"며 "장기로 운용하는 국민연금 자금을 골고루 배분해야 금융시장도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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