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자본만 살찌운 제일은행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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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일은행이 다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손에 넘어갔다.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린 지 5년 만이다. 이 기간 5000억원을 투자한 뉴브리지는 본전의 2.3배가 넘는 1조151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반면 공적자금을 투입한 우리 정부는 5조7495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됐다. '헐값 매각'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물론 외환위기 당시 제일은행은 한국의 구조조정 및 개방의 상징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해외매각이 불가피했으며, 이를 계기로 외국 자본들이 들어와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정도 손실이면 선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재매각의 결과를 놓고 보면 정부가 단기실적에 급급해 엄청난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년 풋백(사후 손실 보전) 옵션' 등 불리한 조건을 수용한 데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재검토할 때가 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반면 외국 자본에는 규제가 없다. 이런 역차별로 인해 국내 은행은 외국자본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 제일.외환.한미은행 등이 예다. 그 결과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계 사모펀드의 즐거운 놀이터"라고 할 정도로 외국 자본이 재미를 보고 있다. 부작용도 크다.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 등이 활개를 치면서 '선진 금융기법 도입'은 실패했고, 단기실적 위주로 소매금융에만 치중하면서 서민.중소기업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외국 자본을 막자는 말이 아니다. 국내 자본이 외국 자본과 똑같이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산업자본이니, 재벌이니 하여 딱지를 붙여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기업들에는 문을 잠그고 외국 자본에만 기회를 준 결과가 이번처럼 그들의 돈벌이만 시켜준 꼴이다. 제일은행 매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나 역차별은 서둘러 고쳐야 한다. 그래야 국부 유출이나 금융산업 왜곡과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