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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강산에가 사랑 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그 '작은 삼손'이 어딜 갔나. 약속 장소로 들어오는 강산에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어깨까지 치렁치렁하던, 약간 곱슬기가 섞인 그 머리가 당장 군대라도 갈 사람처럼 짧아져 있었다.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눈앞에 둔 로커 강산에. 이제 그도 힘을 잃은 것일까. 하지만 인사를 나누며 기자를 보는 눈매-. 그렇다. 부드러워진 듯하지만 속에 가둬진 열정은 오히려 더 강해져 있었다. 스스로의 평가도 그랬다.

"물론 초창기, 폭발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던 그 모습은 이제 보여드릴 수 없을 거예요. 소위 근력이 약해진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선 이제야말로 진화하고 있다고 느껴요."

4년 만에 어렵게 내놓은 다섯 번째 신곡 앨범의 제목을 본명인 '강영걸'로 한 것도 그 때문일까. 세살 때 돌아가신, 사진 한 장의 기억이 전부인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그 이름.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그 이름. 대학 시절 한 친구가 '강산에'란 이름을 붙여주자 미련없이 호적 속에 처박았던 그 이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1992년 1집 '라구요'에 이어 '넌 할 수 있어'가 담긴 2집의 성공으로 그는 일상을 노래하는 '한국적 로커'로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97년 가을 그는 미국 여행을 떠났다. 사막을 누볐다. "나는 진정 뭘 원하는가""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끌어안고. 99년 4집 '연어'를 발표하긴 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은 한국에서, 그리고 음악에서 떠나 있었다. 아예 미국에서 살기를 1년.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대마초) 사건이 터졌어요. 구속돼 있을 때 지금 소속사(다음기획) 김영준 사장님이 찾아오셔서 음악을 계속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그래서 나오자마자 베스트 앨범 등 이전 기획사와의 계약 문제까지 해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이번 앨범의 11곡 모두 작사·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직접 했다. '생활의 발견'을 담은 가사와 멜로디에는 서정성이 넘친다. 다양한 시도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사투리 랩'. 흑인들의 랩이 특유의 영어발음과 악센트 때문에 리듬감 강한 음악이 된 것에 착안, 우리 고유의 랩을 시도해봤다고 한다.

머리곡 '명태'가 그렇다. 아버지의 고향 함경도에서 많이 잡힌다는 생선이 주인공이다. '∼합니데이''∼했다아이함메' 등으로 끝나는 함경도 사투리랩을 위해 피난민 1세대가 모여 산다는 속초의 한 마을까지 다녀왔다. 신나는 펑크록 리듬과 성악가 오현명이 부른 가곡 '명태'가 만나고, '라구요'에서 보여줬던 가슴 찡한 고향의 냄새까지 얹어 느낌이 묘하다.

'와그라노'의 랩은 한술 더 뜬다.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로 시작되는 랩의 첫 머리를 듣다가 언뜻 '어, 강산에가 이탈리어 랩까지 하나'하고 갸우뚱거렸다. 정확한 경상도 오리지널 사투리임을 알아챘을 때의 황당함이 유쾌하다.

타이틀곡 '지금'은 강산에가 부른 최초의 사랑 노래다. 피아노와 스트링 두 개의 버전에 어우러진 그의 원숙한 보컬이 애틋하다. 사막 여행의 단상을 담은 '문 트라이브(Moon Tribe)'도 그의 추천곡이다.

"앨범이 많이 팔려 돈도 좀 벌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가수나 마음 속에 품어두는 솔직한 말이 툭 튀어나온다. 15일∼20일엔 서울 제일화재건물 세실극장에서 콘서트 '강영걸'(02-3272-2334)도 열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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