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對北뒷돈 의혹 DJ가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이 '4억달러 대북 비밀 지원설'과 관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

이회창(李會昌)대통령후보는 30일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부실기업을 이용해 남북거래를 따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청원(徐淸源)대표는 좀더 직접적으로, "金대통령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아무 얘기를 안하는데 은폐하기 위해 입을 맞추려는 것"이라며 "金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니 金대통령이 풀도록 지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른 정보도 있다"며 추가 폭로도 예고했다.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金대통령이 뒷돈 주고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노벨상까지 탄 실상을 낱낱이 밝혀라"고 원색적으로 따졌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 '색깔론'이라고 공격한 것을 두고도 ▶대북 비밀지원이 전쟁 방지에 기여했는지▶뒷돈 거래로 통일을 살 수 있는지▶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과 언론이 반통일세력인지 밝히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대북 지원설이 점점 근거를 얻어간다고 보고 있다.

4천억원을 대출받은(당좌대월) 현대상선이나 대출해준 산업은행 간 해명이 엇갈리거나 아예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우선 한나라당은 전날 제기한 산은 본점 영업부와 구로·여의도지점에서 4천억원이 당좌대월됐다는 주장은 아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산은이 여태껏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산은이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 구체적인 당좌대월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엄호성(嚴虎聲)의원은 "산은이 그간 모든 기업과의 거래내역을 공개해왔는데 그것도 법 위반이었느냐"고 꼬집었다.

또한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7일 당좌대월 4천억원 중 1천억원만 찾았다고 했지만 산은은 모두 즉시 대출했다고 한 점▶현대상선이 4천억원의 존재에 대해 2000년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싣지 않은 것과 이를 두고 산은이 "흔히 범하는 잘못"이라고 해명한 점▶산은이 현대상선의 별도 1천억원 대출사실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현대상선의 2000년 상반기 보고서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며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의 특별감사, 금융감독원의 계좌추적에 즉각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공세가 먹힌다는 판단에 따라 공적자금 국정조사에서 대북 지원설도 집중 추궁키로 했다.

그러나 오는 7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공적자금 국정조사 청문회는 증인채택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견 때문에 사실상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회 공적자금 특위(위원장 朴鍾根의원)는 30일 양당 간사협의를 했으나 증인을 채택하지 못했다. 국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 출석요구서가 본인들에게 전달돼야 하기 때문에 7일 열리는 청문회에는 증인이 아무도 출석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은 이날 청와대 이기호(李起浩)경제복지노동특보를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권영해(權寧海)전 국정원장 등 세풍 관계자 3명을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우린 대응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산은과 현대상선 등 당사자들이 해명해야 할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