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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는소리없는 절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아무래도 신경림(67)시인은 시를 저울질할 때 시의 우열과 완성도 자체보다 시인 삶의 치열함을 우선하고 있다. 책 제목이 '시를 찾아서'가 아니라 '시인을 찾아서'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책은 작고(作故) 시인을 다뤘던 제1권의 후속으로 요즘 시인 23명을 다루고 있다. 1권은 2~3년간 묻혀 있다가 MBC-TV의 '!느낌표'에 소개되면서 벼락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재, 1980년 광주, 전교조 사건 등 동시대 역사가 스며든 2권의 이야기는 거친 숨소리를 낸다.

김지하·정희성·도종환·고은·이성부·강은교·이해인·정호승·김용택·안도현 등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시인에서 부터 그보다는 덜 알려진 시인까지 저자는 발품을 팔아 만나고 얘기하고 술을 마시며 글을 썼다. 우선 첫머리에 배치된 김지하 시인의 시에 대해 "알려진 몇 편의 저항시를 제외하면 오히려 섬세하고 서정적이다. 실존적 철저성에서 오는 진솔함 그 자체다"라고 설명한다.

이미 민중시의 시 형식 결여를 질타한 바 있는 저자는 '1974년 1월'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민중시의 전범으로 내세우며 "급박한 호흡과 화려한 이미지의 변화, 시가 갖는 회화성과 음악성의 절묘한 배합"이라고 극찬한다. 산문이 시가 되기 위해서도 유신에 대한 저항만큼의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대낮에/마당 복판에 갑자기/참새 한 마리 뚝 떨어져/머리 피투성이로 파닥이다 파닥이다/금세 죽어 숨진다/아내가 부삽을 흙에 파묻고/장터 가려는 내 길 막고 서서/몸 부르르 떤다."('그 소, 애린32' 전문)

저자는 이 시를 뒤늦게 읽고 난 뒤 김지하 시인이 91년 분신 정국 때 운동권을 질타한 일을 따뜻한 이해의 시선으로 보듬기까지 한다. "운동권을 중심으로 '김지하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지만 후배를 아끼는 운동권 선배로서, 또 생명을 중시하는 시인으로서 아예 침묵하는 것이 과연 미덕이었을까. 가령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득이한 폭력은 용납한다는 것이 혁명의 논리일 수는 있겠으나, 위의 시에서 나는 그런 폭력조차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정서를 읽은 것이다."

다른 장도 마찬가지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 정희성의 단아한 성품에서 압축미를 설명한다거나, 김용택 시인의 거짓말 못하는 성격을 거론하며 시의 진솔함을 연결시키고 있다.

"콩타작을 하였다/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콩 잡아라 콩 잡아라/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콩 잡으러 가는데/어, 어, 저 콩 좀 봐라/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콩, 너는 죽었다."(김용택 '콩, 너는 죽었다' 전문)

어느날 소설가 박완서씨가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시골 분교를 방문한다. 시인의 학급에는 학생들의 시를 붙여놓은 '우리들 차지'라는 게시판이 있다. 거기서 어느 시를 놓고 박완서씨가 "이건 참 잘 썼네요. 좋은 시인이 될 것 같네요. 잘 가르치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그 시는 시인의 시였다. 그래도 시인은 "야, 정말이라니깐. 박완서 선생님이 내 시가 좋다고 했어야!"하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여러 새가 울었단다/여러 산을 넘었단다/저승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단풍놀이' 전문)

"꽃 그려 새 울려 놓고/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소식."('봄, 파르티잔' 전문)

위 시의 서정춘 시인은 등단 30년에 시집 한 권을 낸다. 대개 짧은 시 속에 "어린이의 순진함과 마술사의 솜씨"를 겸비하며 세상사의 진리 한 토막을 핀셋으로 뽑아내는 시인은 평소 "아직 배운 게 모자라서…"라며 시를 아끼고 아껴왔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스물 세명 시인을 만나고 난 뒤 시에 대해 다시 한 마디를 남긴다.

"적어도 말의 고저나 강약이 크게 기능하지 못하는 우리말의 경우, 시의 리듬이란 자연스러움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즈음 시에 리듬이 없다는 지적은 결국 시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이요, 그것은 시를 억지로 꾸미다 보니까 저질러지는 잘못이라는 얘기가 된다. 자신을 속이고 남에게 거짓말하고, 사기 치고 날조하고, 이것이 적어도 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터이다."

다시 책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본질적이라 함은 근본을 묻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는 시의 근본을 치열함과 절규에서 찾고 있다. 치열함과 절규는 삶이 언어(시)를 배반하지 않고 언어 또한 삶 위나 바깥에서 고독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그 때에야 시가 내게로, 우리에게로 온다고 한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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