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선린관계를 위한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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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9일 중국과 일본은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과거사에서 비롯된 깊은 상호 불신과 지역패권을 둘러싼 대결의식, 영토 분쟁 등 양국 관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두 나라는 1972년 수교 이래 무역·투자와 문화교류 분야에서는 폭넓게 협력해 왔다. 양국간 무역 규모는 연간 9백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투자총액은 2백50억달러를 훨씬 넘는다.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중국에 약 1백5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며 중국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이처럼 양국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돼 왔지만, 정치적 유대는 아직 기초도 단단하지 못하다.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한 냉전 당시의 동맹은 해체됐지만 새로운 이슈들에 잘못 대처하면 관계는 악화될 수 있다. 양국이 여전히 역사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침략 사실을 삭제한 것은 중국인들의 상처를 건드렸다.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것도 베이징(北京) 당국을 격분시키고 있다. 최근 도쿄(東京) 지방법원이 일본군 731부대의 인체실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중국인 원고 측의 피해보상 요구를 기각한 것은 역사의 유산이 양국관계에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중국 정부는 또 일본이 언젠가 다시 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개발과 관련한 연구에서 일본의 역할과 대만에 대한 도쿄 당국의 진의가 무엇인지도 걱정스럽다.

반면 일본도 중국의 군사력·경제력의 증대를 걱정한다. 특히 중국 국방비의 증액과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 중국명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미해결 상태다. 일본은 중국의 해양조사선이 부근 해역에 출몰하자 '영해침범'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또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과 대중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謝過)의 정치'를 점점 참을 수 없어 한다.

중국과 일본은 지역 주도권을 놓고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일본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국제 공동체로의 통합을 환영하지만 앞으로 강한 중국이 갖게 될 전략적·정치적 이해가 미·일 동맹과 충돌할 것이란 우려를 갖고 있다. 양국 모두 한반도의 안정은 원하지만 '통일이냐, 현상유지냐'는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나라는 정기적인 대화와 안보회담을 갖는 등 입장차와 분쟁을 해소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성숙되고 안정된 관계를 위해선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양국 젊은이들과 차세대 지도자들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공해상에서 양국군간 충돌을 예방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한 조치들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중·일 양국은 서로의 의도가 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중국은 국방지출과 군사력증강, 전략적 현대화 계획에 대해 보다 투명하게 밝히고 일본은 아태지역의 미래 안보에서 목표하는 역할과 일본의 핵 정책이 무엇인지 공개해야 한다. 대만에 대한 입장과 미·일 동맹의 영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리=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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