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연극 성금 200만원, 잔잔한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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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편 당 200만원 정도씩만을 들이는 초저예산 연극 시리즈 '제1회 젊은 연출가 오목(五目)전'을 기획한 서울 동숭동 대학로 '100만원 연극 공동체' 사람들은 요즘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불쑥 수중에 떨어진 '공돈' 200만원의 용처를 두고서다.

오목전을 기획한 연출가 박장렬씨는 "극장 대관료과 기획 비용을 분담해 무대를 꾸리는 형편이 보도된 5일 낮 '이상봉'이라고 이름만 밝힌 한 중년이 공동체에 2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본지 1월 5일자 27면> 이씨의 약속은 어김 없었다. 이날 오후 공동체 계좌로 돈이 입금됐다. '100만원 연극 공동체'에 '성금 200만원'이 전해진 것이다.

공동체측은 이튿날 기부자의 신원 확인에 나섰다. 마침 연극판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디자이너 중에 같은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기부자는 디자이너 이상봉(51)씨로 확인됐다. 이씨는 '어렵게 공연하는 사람들을 먼 발치에서나마 도우려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전례없는 응원에 배우 김지은씨는 "좋은 연극을 만들어 보답하는 길밖에 없겠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200만원 중 100만원은 시리즈에 참가한 다섯 극단이 나눠가지기로 했다. 그래봤자 극단 당 20명 정도인 한솥밥 식구들이 변변한 회식 한 번 하기 어려운 돈이다. 나머지로는 다섯 편 중 최우수작 한 편을 뽑아 상금으로 줄까 궁리 중이다.

박장렬씨는 "연출가.배우.평론가 20여 명도 공동체에 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와 다음달 중 정식 발족식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몸을 던져 연극을 올리는 젊은 연극인들의 패기가 대학로에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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