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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 몸살 서울] 쇼핑몰 폭증 동대문 패션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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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차량이 밀리는 시간대가 따로 없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두달간 이 일대의 교통 흐름을 분석한 결과 동대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흥인문로 통과 차량의 시속은 하루 평균 18차례나 10㎞ 미만이어서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출퇴근 때는 물론 자정 무렵이면 동대문 일대는 전국 각지에서 의류 소매상을 태우고 올라온 대형버스들로 뒤엉킨다. 이 때문에 장충동에서 을지로 6가로 진입하는 데 한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동대문 교통안내소에 근무하는 金모(23)의경은 "교통체증이 극에 달해 남산 타워호텔까지 꼬리를 문 차량 행렬을 보면 힘이 빠진다"며 "그나마 원활하던 반대편(동대문→장충동) 차로도 최근 쇼핑몰 헬로APM이 문을 열면서 교통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패션몰=하루 유동 인구가 1백만명에 달하는 동대문 패션거리. 1990년 아트플라자 개점 이후 밀리오레·두산타워 등 10여개의 패션 쇼핑몰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인구와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동대문시장의 27개 상가에 이미 들어선 점포만 3만여개. 이 때문에 흥인문로·청계천로 등 주요 도로는 포화상태지만 마구잡이 개발은 여전하다. 여기에다 최근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으로 주택시장에 몰렸던 돈이 상가로 방향을 틀면서 쇼핑몰 건설 열기를 부추기고 있다. 동대문 주변에는 웬만한 규모의 땅만 있으면 어김없이 고층 쇼핑몰이나 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현재 분양 중인 상가는 '디오트' 등 4곳,7천7백여개 점포가 입주할 정도며 분양을 앞둔 상가도 5∼6곳에 이른다. 대부분 15층 이상인 쇼핑몰들은 거리 곳곳에서 분양 광고지를 나눠주고 있다. 1993년에 지어진 15층짜리 멀쩡한 건물을 헐고 쇼핑몰을 지으려 준비중이며, 신당동 청평화시장 뒤편 담배인삼공사 부지에는 2005년 완공을 목표로 28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신축 중이다. 서울시 소유의 동대문주차장 부지에 복합 쇼핑몰이 계획돼 있고 경찰기동대 자리에도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동대문 상인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작성을 대행해주는 동타닷컴 신용남 대표는 "금리가 워낙 낮아 재테크 차원에서 상가를 마련해두려는 가수요가 크게 늘어났다"며 "기존 상인들도 좀더 좋은 상권을 찾아 새로 분양하는 상가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허술한 규제가 마구잡이 개발 부추겨=동대문에서 영업 중인 패션 쇼핑몰 가운데는 서울시의 도심 재개발 기본계획에 어긋나는 불법 건축물이 적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M빌딩은 14층까지만 지을 수 있었으나 관할 중구청에서 층고 제한이 없는 일반건축물이란 편법을 적용해 20층으로 올렸고,33층으로 지어진 D빌딩도 도심 재개발 기본계획에는 20층을 넘을 수 없도록 제한돼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4대문 안 상업지구의 일반건축물은 용적률 6백% 이내의 규정만 지키면 기반시설을 확충하지 않아도 허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체 연면적은 늘었지만 도로·주차장·공원 등 기반시설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쇼핑몰을 포함한 판매시설은 업무용 빌딩보다 교통량 유발 효과가 5배 이상 많다. 그러나 중구청은 "개발업자와 토지 소유주가 절차에 따라 건축 심의를 신청하면 재산권을 존중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4대문 안 도심은 땅값이 비싸 엄청난 토지 보상비 때문에 도로를 넓힐 여유가 없다"면서 주차난이 고질화되자 동대문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하는 고육책을 검토하고 있다.

건물 신축을 위한 개발업자의 과열 경쟁도 마구잡이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올 1월 개정된 건축법 조례는 토지 소유주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복수로 건축 심의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같은 땅을 놓고 2~3개 개발업자가 각각 건축심의를 받아 분양하는 바람에 말썽을 빚은 경우도 두 곳이나 된다.

이에 비해 마구잡이 개발을 막는 제동장치인 교통영향 평가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 등 판매시설은 연면적 6천㎡ 이상일 경우 교통영향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개발업자는 당연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업체에 용역을 맡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교통영향 평가의 대부분은 진입로의 넓이와 주차장 입구의 위치를 손질하는 수준에서 끝난다.

경원대 이창수(도시계획학과)교수는 "민간업체의 교통영향 평가는 교통량을 조작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요식행위에 불과한 교통영향평가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마구잡이 개발 피해=동대문 일대의 마구잡이 개발로 땅주인과 사업자는 개발 이익을 톡톡히 챙기고 떠나지만 남아 있는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쇼핑몰의 뜨거운 분양 열기와 대조적으로 동대문 일대 상가의 공실률은 평균 10∼20%에 이른다. 목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B상가 공실률은 30%를 넘어서고 있으며,C상가는 일부 층의 임대료를 30% 정도 낮춰 재계약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동대문 주변 3만개 수준인 점포가 내년 말이면 5만개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지난해 하루 평균 4백억원에 달했던 동대문 주변 상가의 매출액은 요즘 2백70억원으로 곤두박질했다.

제일평화시장 홍택선 사장은 "무분별하게 건축 허가를 내주는 바람에 동대문 일대 교통은 말할 것도 없고 상권 자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며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 경기는 더욱 썰렁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동대문에서 7년째 도매상을 해온 安모(45)씨는 "교통이 막히는 동대문을 피해 남대문시장을 먼저 다녀오는 지방 상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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