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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무용의 알파와 오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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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나초 두아토·오하드 나하린. 그러면 다음은? 지리 킬리언이다.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세 사람은 현재 세계 현대발레계를 이끄는 삼두마차다.

한국의 무용 애호가들에게 올해는 축복이다. 킬리언이 맹주로 활동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가 10월 16∼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내한 공연을 펼치면 올해 세 거두의 무용세계를 두루 감상하는 셈이다. 두아토가 이끄는 스페인 국립 무용단은 이미 6월에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오하드 나하린이 주도하는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은 오는 27∼29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두아토(45)와 나하린(50)의 영향소는 바로 킬리언(55)이다. 지금은 당대를 대표하는 경쟁 관계지만 두 사람의 엄연한 뿌리는 킬리언이다. 두 사람은 NDT의 킬리언 밑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9년에 이은 NDT의 두번째 내한 공연은 그래서 더욱 뜻 깊다. 현대발레의 가장 신화적인 몸짓(킬리언)과 거기에서 증식한 또 다른 형태의 변주곡(두아토·나하린)을 거의 시차없이 비교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NDT가 선보일 작품은 '더 이상 연극은 없다'(88년)'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서'(81년)'작은 죽음'(91년)'쉬 붐'(2000년) 등 모두 네 편이다. '쉬 붐'을 제외한 세 작품은 킬리언이 안무했다. 그가 NDT의 예술감독으로 있던 시절에 만든 것이다. 지금은 NDT의 예술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단체의 정신적인 지주다. '쉬 붐'은 이 단체의 차세대 주자인 폴 라이트풋의 작품이다.

킬리언은 고전 발레에다 민속무용·현대무용 등 유관 장르의 다양한 테크닉을 과감하게 접목한 치밀한 안무로 정평이 나 있다. 안무에서 드러나는 수학적인 분석력과 이를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기하학적인 몸짓은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킬리언표 무용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다. '더 이상 연극은 없다'와 '작은 죽음'은 추상과 초현실주의적인 색채가 더욱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꼽힌다.

NDT는 각기 성격이 다른 세 개의 팀으로 나뉜다. 지난번처럼 이번에 내한하는 'NDT1'은 가장 중요한 대표급 팀이다. 뛰어난 기량을 소유한 모든 연령의 무용수 32명으로 짜여졌다. 'NDT2'는 21세 이하의 젊은 무용수로,'NDT3'는 40세 이상의 관록파들로 이루어졌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어느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더 이상 연극은 없다'는 작곡가 안톤 베베른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현악 4중주를 위한 5개의 소품'이 음악으로 쓰인다. 음악이 내는 소리와 구조를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서'는 킬리언의 고국인 체코의 작곡가 레오 야나체크의 삶을, 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기에 맞춰 만든 '작은 죽음'은 침략·섹스·에너지·침묵·무지·취약성 등 여섯개의 상징을 통해 잔인과 방종이 팽배한 세계를 그렸다. 각각 야나체크와 모차르트의 음악이 쓰인다.

킬리언은 현재 일본의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킬리언-NDT 페스티벌 2002' 행사의 예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그동안 일본과는 상당한 교류가 있었으나 한국은 초청 공연 외에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올해 킬리언은 물론 다른 톱클래스 무용가들의 공연을 계기로 합작공연 등 새로운 형태의 교류 방식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기대된다. 오후 7시30분. 9만∼3만원. 02-780-6400.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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