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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으면 체제위기" 인식 핵·미사일 결단 내릴지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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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고 있는 일련의 대내·대외정책 변화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북한이 파격적인 개방 내용을 담은 신의주 특별 행정구 기본법'을 공포함에 따라 남북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런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대내적으로 지난해 10월 金위원장의 지시로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계획 권한'의 일부를 하부 기관이나 지방에 이양토록 했다.

또 지난 7월 1일엔 물가와 임금을 인상하는 개혁조치를 취했다. 대외 관계 개선에도 북한은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해 대부분의 유럽연합(EU)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은 데 이어 최근엔 경의·동해선 연결 등 대남(對南)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일본과도 국교 정상화 교섭에 합의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시기에 마련된 터전에서 그 모양대로 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그 면모를 끊임없이 일신해야 한다"는 이른바 金위원장의 '신사고'가 하나씩 구체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金위원장이 이같은 결단을 내리게 된 근본 배경은 무엇인가.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은 "북한이 그동안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곤란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세습 체제에 따라 김일성의 유훈을 부정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비효율적인 당(黨)우위의 경제운영 방식을 비롯해 일본인 납치 등이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왔기 때문에 이를 급격하게 부정하기가 곤란했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金위원장이 획기적인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취하고 일본인 납치를 인정, 사과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는 게 통일부 고위 당국자의 분석이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아리랑 공연도 '김일성 주석 시대의 일단락'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金위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은 북한이 처한 경제적 곤궁, 국제 정치상의 고립 등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체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판을 바꾸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앞으로 다양한 개방정책을 선보일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金위원장이 핵·미사일 문제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벌써부터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金위원장이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미국 방문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다시 규정한 미국의 강경 정책을 감안하면 이들 현안에서 양국이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동현 기자

leehid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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